어릴 적 빨간색 소독약 아카징키(머큐로크롬)은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개에 물려도,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파도 발랐습니다. 개에 물린 상처는 몰라도 머리나 배가 아픈 것은 무관한데도 완치될 수 있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만병통치약으로 쓰는 '통하다'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를 빨아먹는 에너지 뱀파이어처럼 우리말 어미를 잡아먹어버립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요즘은 '통하다'가 아카징키처럼 점점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네요.
'을/를 통하다'를 알아보시지요. 경로·연결, 원인·이유, 방법·수단으로 삼색 신호등처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로·연결 따위는 거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옥문을 통해 지옥으로 간다.”는 "지옥문을 거쳐 지옥으로 간다."가 됩니다. 또한 원인·이유나 방법·수단을 뜻하지요. “고난을 통해 사는 의미를 배우다”는 “고난 때문에 사는 의미를 배우다, 고난으로 사는 의미를 배우다.”라고 해석됩니다. 특이한 것은 원인·이유나 방법·수단을 나타내면 '에 따르다, 에 의하다' 따위와 비슷비슷합니다. 위 문장을 “고난에 의해 사는 의미를 배우다.”라고 표현하면 복제품처럼 비슷한 의미가 됩니다.
그럼 이오덕 주석 1) 씨가 확 뜯어고친 방법을 들여다볼까요? ‘을/를 통하다'를 조사(에서, 으로, 을/를, 하여 따위)나 조사+용언(저편에 있는, 을 거쳐, 을 밟아, 을 지나가는, 을 하면서 따위)으로 고칠 수 있다고 밝혔지요. 이오덕 씨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겠습니다. 다만 가름 끈으로 책을 나누듯 두 가지로 구별하겠습니다.
하나는 앞말에 일반 한자어 명사가 오면 조사로 고칩니다.사람이 오면 에게, 한테 따위로 고치고, 사물이 오면 에, 에서, 으로 따위로 변경합니다. “나는 누나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는 “나는 누나에게 소식을 들었다”로 가다듬고,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 소식을 들었다.”는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로 바로잡습니다.
둘은 앞말에 동사성 한자어 명사가 오면 다양한 조사+용언으로 다듬습니다. 헌법 127조 1항의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는 “국가는 혁신과 정보와 인력을 개발하여 ….”로 손댑니다. “예방 접종을 통하여”는 “예방 접종하여”가 되고, “점검회의를 통하여”는 “점검회의를 열어”로 바뀌고, “산소와 화학반응을 통해”는 “산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로 변화가 됩니다. 책갈피를 끼우면 개발(하다), 접종(하다), 회의(하다), 반응(하다) 따위는 동사성 한자어 명사입니다.
딴 길로 새면 ‘통하다’는 "모든 길(대로)은 로마로 통하다."와 같은 속담처럼 '대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통하다'하고 '따르다, 의하다'하고 '대로'는 김밥의 단무지, 계란, 김처럼 삼각관계를 형성합니다. 김이 단무지와 계란을 감싸듯 '대로'는 '에 대하다, 에 의하다'를 감싸줄 수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계획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다,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다.”는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다.”가 됩니다.
갈무리를 지으면 을/를 통하다는 많은 용언과 대응하는 범용품이고, 에 따르다·에 의하다 따위의 복제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