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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Aug 22. 2024

침묵에 길들어지는 건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 교실의 흔한 풍경은? “오늘 배운 내용 중 질문하고 싶은 것이

우리나라 교실의 흔한 풍경은?

“오늘 배운 내용 중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손 내려”라는 다른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질문한 이가 민망해져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런 장면은 사회에 나와서도 비슷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개최국인 한국 기자에게 발언권을 주었으나, 이내 정적이 흘렀다.

그는 영어로 질문하기가 어렵다면 통역원이 있으니 다시 물으라고 요청했다.

모두 말문을 닫자, 중국 CCTV 루이청강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들을 대신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한국 기자는 아무도 없나요?”라는 대통령의 거듭된 외침에도 다들 조용했다. 

   

왜 한국 사회에서 질문하는 것은 공룡처럼 멸종했을까.

하나는 타인을 의식해 머뭇거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질의하겠다고 손을 들면 다른 이들은 이해가 덜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 다른 이의 눈을 의식했다.     


다른 하나는 실패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회의 때 의견을 내라고 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면서 실수를 안 하려고 입을 닫는다.

그래도 한마디 해보라고 하면 마지못해 상급자가 제시한 의견이 옳다며 사족을 붙였다.

상사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어서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침묵을 유지하면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는 꼴이다.

이런 의사결정은 개인이나 조직을 모두 비합리적 선택으로 몰아가기 쉽다.  

   

질문하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이 불러올 수 있다.

2차 대전 때 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일본 이치키 대령은 900명의 병사를 데리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1만 2천 명의 미군에게 한밤중에 만세를 외치는 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일본군은 고기 분쇄기처럼 갈려 나갔다.

한 사병이라도 “대령님! 조용히 기습하죠?”라고 여쭈었더라면 희생이 적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을 매기므로 암기력과 빈칸 채우기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풀이의 기술을 알려주는 데 최적화된 강사가 수많은 연봉을 받는다.

학생들은 이들의 수업에 참여하여 요령을 배우고, “모르면 일단 외우자”를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였다.

그들도 본질을 찾아가는 토론식 교육을 배우고 싶지만, 성적을 관리해야 하는 수험 생활은 ‘나중에 해’라면서 미루기만 한다.   

   

그런 암기력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다.

‘2090 미래 보고서’에는 1명의 플랫폼 기업인, 2명의 인기 정치인, 4명의 연예인,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AI, 나머지 99,997명의 단순 작업자나 실업자가 된다는 어두운 전망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은 가짜뉴스, 저작권 훔치기, 윤리성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모범 답변을 알아서 해주는 AI의 편리함에 묻혀 스스로 따지고 생각하는 능력을 삭제하기 때문이다.

TV와 유튜브가 그러하듯 그 기술은 인간이 똑똑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늘 품을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엔 정답이 없다.

그건 문제지에만 있을 뿐이다.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니 오답이 마구 나오는 것이다.

“침묵이 금”이라는 격언을 받아들이면, 세상이 만든 그럴듯한 거짓말이 당신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엉뚱한 답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묻고 또 캐물어라.

이제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물음을 연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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