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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Mar 26. 2022

배꼽을 잡아먹은 배

#10 복합명사류 접미사 적

   

이솝우화 『황소와 개구리』를 아시는지요? 개구리가 황소를 따라 하다가 배가 터져 죽습니다. 세월이 사람을 채찍질하면 배꼽은 퇴화하고, 배는 점점 커집니다. 스무 살 때 날씬한 배가 어느새 아저씨가 되고 보니 개구리처럼 동그랗게 튀어나온 배만 보입니다. 배가 배꼽을 잡아먹었습니다.

     

 복합명사류 적(的)은 배꼽을 잡아먹은 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일본어는 명사와 명사를 연결할 때 분리 불안증을 갖고 있어 뭔가 갖다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명사와 명사 사이에 조사 ‘노(の)’처럼 접미사 적(的)을 붙입니다. 더 나아가 후치사 상당구나 형식 명사까지도 붙입니다. 이것은 복합명사가 발달하지 않는 일본어의 개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말은 중간에 조사나 접사가 없더라도 명사로 연속해서 연결하는 복합명사가 발달했습니다. 보기를 들면 일본어다운 표현인 경제의 문제, 경제적 문제, 경제에 대한 문제, 경제상의 문제이고, 우리말다운 표현은 경제 문제입니다. 이처럼 복합명사처럼 사용되므로 ‘복합명사류 적’이라고 호적부에 올립니다.

     

 그럼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하나는 학문이나 생각·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학문으로는 경제, 고전, 구조, 과학, 물리, 사회, 역사 따위가 있습니다. 생각·성격으로는 관념, 이론, 내면, 외향, 이중 따위가 있습니다. 이런 말은 다른 접미사 ‘론, 법, 설, 주의, 학’ 따위에 먼지처럼 잘 달라붙습니다. 

    

 둘은 배꼽을 잡아먹은 배처럼 파생된 형태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본디 천문학은 별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나왔습니다. “천문학적 연구”는 “천문학 연구”가 됩니다. 하지만 파생되면 별과 같이 무수히 많다는 뜻입니다. “천문학적 금품수수”는 “엄청난 금품수수”가 됩니다.

     

 셋은 ‘에 관하다·에 대하다’와 같은 후치사 상당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계적 특성은 기계에 대한 관한 특성이나 기계에 대한 특성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조사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으로, 에, 에서’로 고칩니다. 더 나아가 ‘로서, 에서 보면, 으로 보면’으로도 손질할 수 있습니다. “실무적 문제”는 “실무에서 문제”나 “실무에서 보면 문제”로 고칠 수 있습니다. 불꽃은 맨 마지막이 화려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붙임을 참조하시어 예문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익혀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짐승이 되어가는 과정

형용사류 접미사 적(的) 

    

 불금에는 술 한 잔이 간절하십니까?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습니다. 술을 많이 먹을수록 사람은 짐승으로 되어 갑니다. 『탈무드』에서 악마는 술을 만들 때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 피를 넣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처음 술을 마실 때는 양처럼 순합니다. 취하면 사자처럼 사나워집니다. 더 취하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고성방가를 합니다. 마지막은 돼지처럼 말이 흐리멍덩해지고, 도로를 이불 삼아 잠이 듭니다.

     

 이처럼 적(的)을 많이 사용하면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이 흐릿해집니다. 적(的)을 적게 써야 신사가 됩니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은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라고 말합니다. ‘신사적’은 ‘신사답게’나 ‘예의 바르게’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접미사 적(的)은 동물·사람과 관련되거나 감정·성격을 표시하거나 비유·형용을 나타내는 형용사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동물·사람에는 귀족, 기인, 남성, 노예, 독재, 동물, 서민, 신사, 야수, 여성, 영웅, 인간, 제왕, 지도자, 천재, 초인, 톨스토이, 형제 따위가 있습니다. 감정·성격에는 감격, 감명, 굴욕, 낙천, 인도, 탐욕 따위가 있습니다. 비유·형용에는 과도기, 기적, 낭만, 말기, 말세, 몽환, 산파, 원시, 평화, 풍자, 해학, 환상 따위 있습니다.

     

 이런 성질이 가진 접미사 적에 꼬리표를 붙이겠습니다. 형용사처럼 사용되는 접미사 적(的)을 형용사류 적(的)이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비유·형용을 나타내는 조사 ‘의’와 비슷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깝다, 같다, 비슷하다, 유사하다, 흡사하다, 닮다, 답다, 롭다, 스럽다 따위로 바꿉니다. 좀 더 구별해 보면 ‘답다’는 주로 사람에게 붙습니다. 기인, 남자, 노예, 신사, 여성, 여성 따위에 사용합니다. “노예적 생활”은 “노예다운 생활”이라고 패를 교환합니다. ‘롭다’나 ‘스럽다’는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감격적 순간”은 “감격스러운 순간”이라고 패를 바꿉니다.


 마지막으로 접미사 적(的)을 조사 ‘의’로 고치자는 의견은 잔칫집에 가서 음식도 못 먹고, 매만 맞는 격이므로 바른 고치기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조사 ‘의’를 대신하여 ‘적(的)을 사용한 것은 쇳소리가 나는 한자와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교장 선생님 훈화는 마지막을 잘 들어야 하는 것처럼 붙임을 참조하시어 형용사류 적(的)을 팔팔하게 익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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