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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25. 2017

마흔네 살의 나에게

10년 뒤 나에게 띄우는 편지



안녕 제린아.


 네가 나보다 열 살 많지만 어쨌거나 너는 나니까 말을 놓을게.


 오늘은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밖에는 비가 오고 유관부서 피드백을 기다리고 퇴근하느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하는 중이야.


 오늘은 일이 많이 바쁘지 않았던 덕분에 회사에서 친한 동료랑 메신저로 이야기하다가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에게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쓰게 하고, 10년 뒤에 그 편지를 주게 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이야기를 했어. 앞으로 다가올 회사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그 마음을 10년 차 회사원이 되어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10년 전, 스물네 살의 내가 되어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시도해 봤는데, 역시 시간이 많이 흘렀나 봐. 내가 10년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도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노력해봐도 정확히 이입하기 어렵더라. 그래서 그 대신 미래의 나인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




제린아,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니.


 아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10년 후 미래와 같진 않겠지. 10년 전에 생각한 서른네 살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다른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요제린'이라는 사람의 성품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


 스물네 살 때 나는 나이가 더 들면 더 현명해지고, 상처와 힘든 일로부터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하고 당당해질 줄 알았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여전히 난 혼자 결정하는데 익숙하지도 않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냉정하게 생각하기보다 당황부터 하기 일쑤야. 마치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 나온 가사처럼 말이야.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30대를 어느덧 절반 가까이 보내고 나니, 30대는 다시 돌이켜 인생을 다시 쓰기도, 그렇다고 이렇게 머물 수도 없다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 누군가 그랬다지. '이렇게 살 수도, 그렇다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가 바로 30대라고. 지금 마흔넷인 네가 이 말을 들으니 어떠니. '30대야 말로 진정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이러면서 아쉬워하고 있지는 않니.


 지금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다면 아마 팀장쯤 되었겠구나. 어떤 직군에서 일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필드에서 기회가 계속 주어졌다면 글로벌 업무나 기획 업무를 하고 있겠지. 어쩌면 한국에 없을 수도 있을 거고.


 2026년이면 회사의 시스템이나 시장 환경도 지금이랑 많이 다를 테니 지금은 내가 모를 변화에 맞춰 일을 잘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다만 사회생활을 하는 40대에게 리더십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너는 10대나 20대 때 좋은 리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 무엇보다 아랫사람을 다루는데 무척 서툴러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 10대에 학급 임원 경험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고교나 대학 때 역시 후배들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했지. 그래서 군대에서는 후임들에게 차라리 무관심하게 대하며 거의 선임이 되면 누구나 차는 분대장도 동기에게 양보하곤 했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한 해, 두 해 하다 보니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40대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리더의 역할이 요구되더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난 40대의 내가 갑자기 슈퍼맨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마흔넷의 나는 여전히 겁도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당황하겠지. 그래도 아랫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러면서도 주관을 잃지 않는 리더가 되면 좋겠어. 최소한 이랬다 저랬다 기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네가 20대, 30대에 만났던 좋은 리더들의 장점을 본받으며 말이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도 지금부터 노력할 거야.




그리고 아마 가정에서는 아빠가 되어 있겠지.


 초등학생인 아이가 한 둘 정도 있을 수도 있겠구나.


 우리의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 항상 바빴던 아버지. 퇴근하셔서 식사하는 아버지께 상장을 받아와 보여드리면 내용도 다 읽어보지 않은 채 "자알~ 했어요~"하고는 다시 밥을 드셨어. 그리고 일요일이면 항상 정오가 지나서 일어났지. 그땐 그런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어. 그렇게 열 살을 넘기고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너에게 아버지는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어. 밀리지 않게 학원비와 용돈만 대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


 서른넷이 된 나는 이제 그랬던 아버지를 이해해. 야근에 회식에 2010년대 지금 대한민국 회사원들도 자신의 라이프를 100% 컨트롤할 수 없어. 토요일에도 일하던 90년대 샐러리맨들은 또 어땠겠니. 아버지는 나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어.


 너도 기억하겠지. 스물한 살의 어느 가을날. 약수터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약주 한 잔 걸치신 아버지가. 좀처럼 그렇지 않으신대 취해 쓰러지셔서 모시러 갔었지. 땀에 절은 운동복을 벗겨드리고 알몸의 아버지를 씻겨 드릴 때, 몇 마디 하시던 아버지 말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40대의 너도 그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할 거야.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어. 하지만 90년대 아버지들이 그랬듯 서로 간의 격 없이 애정과 추억을 공유할 골든타임을 놓쳤던 거지. 30대가 된 나는 그걸 이해하지만 고작 여덟아홉 살의 나는 몰랐었어.


 회사생활을 하면 많이 바쁠 거야. 상무님이 갑자기 주말에 일을 시킬 수도 있고, 팀원이 부족해서 너도 실무를 도와야 할 수도 있겠지. 2026년의 직장문화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력하는 아빠가 되길 바라.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잘한 일에는 칭찬도 듬뿍,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할 수 있는 아빠가 마흔넷의 나였으면 정말 좋겠다.




끝으로 건강하렴.


 넌 한 번도 마른 몸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아마 여전히 배가 나오고 목과 허벅지가 두꺼울 거야. 부디 어디 아픈데 없으면 좋겠다. 너의 건강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 달렸으니까 내가 더 잘할게. 너도 더 먼 미래의 너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술도 많이 안 먹었으면 좋겠다. 담배는 절대 다시 시작하지 말고.


 블로그를 계속 쓰게 된다면 2026년 10월의 어느 날, '과거의 오늘'에 이 글이 뜨겠지. 안타까운 마음보다 흐뭇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을 수 있길 바라본다.


언제 한 번 만나서 소주나 한 잔 하면 좋겠는데.


2016년 10월.
서른네 살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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