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7] 겨울
'여름이 낫냐 겨울이 낫냐'는 질문에 나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겨울!'이라고 답한다.
연평균 기온이 워낙 낮은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탓에 추위에는 견딜 수 있지만 더위엔 취약한 기질 탓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장마는 끔찍하게 싫지만 '폭설'에는 로망을 갖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는 1년 중 절반의 기간 동안 눈이 내린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판타지인가' 싶겠지만, 양력으로 시월생인 내가 태어나던 그 날에도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고 하고, 고교시절 어느 4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도 희미한 눈발이 날리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아주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눈이 내리면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태어나던 날 눈이 내렸다는 이유로, 나는 그걸 '눈의 축복'이라고 불렀다. 살면서 고달프고 울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어김 없이 다음 날 눈이 내리기도 했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네가 내려와줬구나'라고 생각했다.(5월과 9월엔 화창한 날씨 자체가 축복이었고. 그렇다고 여름에 고달프고 울적한 일이 없었던 건 아닐텐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어쩌면 눈의 위로를 받지 못해 여름이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는 눈오는 날이 포근한 이유는 액체 상태의 수분이 고체 상태의 얼음결정으로 변환되면서 응고열을 뱉어내기 때문이란 걸 알지만, 여전히 어떤 '축복과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향을 배경으로 '일 년 내내 눈이 오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쓰다 멈춘지는 한참 되었지만..)
언젠가는 눈의 왕국에 갇혀 한데 모인 그 사람들이 느낄 '축복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