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읏 Oct 31. 2020

엄마네 이발소

한 달에 한번 문을 여는...

이발소의 첫손님 


아들 머리가 덥수룩해졌다.

한참 성장기인 9살 아들은 요새 먹는 것 모두를 제 몸을 키우고 늘리는데 쓰는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아들의 머리카락은 제 멋대로 자라나 있었다.


오빠 옆에서 놀고 있는 5살 딸은 옆머리카락을 종종 입에 물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딸의 머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5년째 레고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남편은 그냥 지저분해 보인다.

꼭지 머리를 묶고 다니는 남편의 주변머리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발을 할 때가 되었다.

삐그덕 거리는 다락문을 열고 이발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물론 나는 이발사가 아니다.

한 달에 하루 익숙지 않은 가위질을 하는 날....

오늘은 엄마 이발사가 된다.


마음먹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벌써 5년째 서툰 가위질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해 온 세월에 비해 실력이 늘지는 않는 것 같다.

처음에는 가위질만 하다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이발 기기를 켰고 좀 더 빠르고 예쁘게 자르기 위해  

숱가위도 장만했다

그렇게 실력보다는 장비 빨로 5년 정도를  버티고 있다.



지루한 게 제일 싫은 9살 이발


이발이 마냥 좋지 많은 않은 아이를 의자에 앉힌다.

노련한 솜씨가 아닌 엄마의 이발은 아이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노란 보자기를 아이의 목에 두르고 스프레이로 칙칙 — 

수북한 머리를 적셔주며 가위로 차근차근 끝을 정리하며 모양을 잡아준다.

아이가 참을 수 없이 지겨워할 때 즈음 이발 기기를 켜고 목 끝부터 위로 살살 올려주며 


“금방 끝나, 잘했어!” 라며 상황을 마무리한다.


가위질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 목욕을 할 때까지 아이와의 이야기를 끊이지 않고 한다.

좋아하는 책, 레고 이야기 등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제법 이발에 익숙해진 아이는 이제 완성된 머리의 모양도 컨펌을 하기도 하고, 

앞머리의 길이도 요청을 한다.


그렇게 첫 번째 단골손님의 이발이 끝난다.



멈출 수 없는 5살 이발


엄마는 밥하듯이 이발도 당연히 하는 줄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5살 딸 

(아직 전문 미용사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딸은 시종일관 자기 시야를 가리는 엄마의 손이 불편한지 기우뚱거린다.

이제는 "가만히! 그대로 멈춰라"등의 주문이 먹히질 않는다.

가위질을 하면 그대로 따라가고, 빗질을 하면 반대로 움직이는 제멋대로의 이발이다.

그래서 앞머리는 항상 기울어져 있다. 가끔은 며칠에 걸쳐 머리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자랄 테니깐.


여차저차 두 번째 손님도 마무리.



3분 이면 끝! 남편 이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머리를 기르더니 정수리만 남기고 옆머리를 밀었다.

그러고는 나보다 고무줄을 더 애장 하는 남자가 되었다.

(가끔 처제에게 고무줄을 선물로 받기도 한다)

간편하고 관리도 나쁘지 않아 몇 년째 상투 같은 머리를 하고 다닌다.

옆머리만 밀어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정수리 위로 머리를 질끈 묶어버린다.

3분이면 끝난다.


마지막 손님은 덤.



한 달에 하루 익숙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날


할 때마다 서툴고 새롭게 느껴지는 가위질이 좋다. 윙윙 거리는 이발 기기는 긴장되고 찌릿하다.

년수로 5년째이지만 회수로 일 년에 12번 정도 가위질은 한 것 같다.

그사이 가윗날이 무뎌져 버렸다. 

언제까지 <엄마네 이발소>를 아이들이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며 속닥거리는 찰나의 순간이 재밌고 즐겁다.

또 그런 날들이 하나둘씩 모여 아이들의 기억에 엄마를 추억하는 한 장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십 년도 넘은 오랜 단골 미용 가게가 있다.

멀지 않은 친정에 가는 날이면,

엄마에게 머리를 부탁한다.

미용실에 가지 않는 딸의 머리를 힐끗 보시며 “다듬을 때가 됐네~” 하시며 주섬주섬 서랍에서 

꼬깃한 가방 하나를 꺼내신다.

서랍 속 오래된 가방은 마흔 넘은 딸을 위한 가방이다.

젊은 미용사 시절이 있으신 친정엄마는 아직도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계신다.

칠십이 넘은 엄마는 낡은 가위를 들고 떡집 보자기를 뒤집어쓴 마흔 넘은 딸의 머리를 잘라주신다.

꼬치 빗으로 머리를 훑으면서 늘어가는 딸의 흰머리를 걱정해주시기도 한다.

엄마와 거울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만족스러운 머리 모양을 만들어주신다.

엄마가 해주신 머리는 어디에도 없는 나만을 위한 맞춤 스타일이다.


엄마의 손길이 익숙한 나는 십 년 넘게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가 편안한 자장가 같고 쓰다듬듯이 머리를 훑어주는 엄마의 빗질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포근함이다.

이렇게 일 년에 몇 번..... 나도 엄마네 이발소를 찾아간다.

엄마에게 머리를 맡기는 일이 나에게는 엄마를 기억하는 습관이 되고 있다.


좋은 기억만큼 삶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없으니....


그 손길을 기억하며.





여기서

히읏!


  
  

photo by / haheeho


이전 06화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