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부터, 그러니까 9년 전부터 시작한 연말 행사가 있다. 남편과 함께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서 봉투에 넣어두는 것. 그 해 마지막 즈음 열어서 몇 개가 이루어 졌나 확인해 보는 것.
' 글쓰기. 책 쓰기. 블로그나 브런치에 연재하기. '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늘 나의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 놓은 책. 글쓰기 요령을 알려주는 책. 자기 계발서 등을 수시로 읽었다.
특히 열정이 다시 불타오를 수 있는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목구멍에 아직 넘어가지 못한 알약처럼 늘 찜찜하고, 불편했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글쓰기로 상을 자주 받았다. 일기도 다른 친구들보다 성실하게 빼먹지 않고 써서 늘 상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능보다는 성실함으로 받은 상이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글쓰기 자신감은 사라져 버렸다.
쟁쟁한 대학교에 다니던 동기들의 글쓰기는 달랐다. 재미와 위트 있는 글쓰기를 쓰겠다며 형식은 가볍게 무시하던 내 글과 달리, 설득적이고 구성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았고, 상대의 평가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때 좌절감을 느꼈다. 평가로 난도질당한 내 글쓰기를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척했다. 쿨 한 척했다. 그나마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글쓰기마저 그 모양이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건 서류에서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때였다.
그러던 내가 15년 만에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책을 쓰고 싶었고, 내 글을 알리고 싶었다. 이제 나도 웬만큼 인생 경험과 내공이 쌓이지 않았을까? 지나온 세월과 변화무쌍했던 내 삶이 내가 쓸 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치열한 진로 고민, 치열한 배우자 찾기, 두 번의 유산, 임신을 위한 시술과 실패. 그리고 성공. 한 번의 수술.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 이야깃거리는 준비되었고, 내공도 어느 정도 쌓였고, 나도 적절하게 나이 들었으니
이제는 미룰 수도 없고,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많이 얻었으니) 잘 안 되도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의 문장력이 아직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책을 읽으며 좋은 작가들의 글 솜씨와 생각을 엿보았으니 어쩌면 나아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은 정말 어려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이면 어쩌지.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올해 마흔이다. 나는 50살에 그리고 싶은 내 삶이 있다. 지금이 기회다. 이제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쓸 것이다.
" 꿈에 대한 도전 없이 이대로 살다 간다면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면? "
죽음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용기를 준다.
그래서 내 열정은 다시 깨어났다. 이루는 게 목적이 아닌, 최선을 다한 도전이 목적이 되고 싶었다.
열정이 깨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내 옆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다시 열정이 샘솟자 나의 주변은 달라지고 있었다.
" 성공보다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하자. "
새로 정비된 나의 열정은 확신을 갖고 미래를 계획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열정을 더 깨우기 위해 책을 찾았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4권 빌렸다. 도서관 밖에서 햇빛을 쐬며 책을 읽는데. 마음이 꽉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내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나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 당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잖아요. "
그랬다. 이제 다시 책을 놓지 말자. 집에 와서도 틈 날 때 마다 책을 읽었다. 새벽에 아이랑 놀아주면서도,
늦은 밤에도, 아침에 아이가 아직 안 일어났을 때도. " 아싸! " 하며 읽어댔다.
그러다가 내 인생 파일을 만들었다.
내 미래의 이미지, 나이 별로 이루고 싶은 것들, 미래일기와 감사일기, 나에 대한 탐구 등을 기록했다.
거기까지는 쉬웠다. 즐겁고 신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글쓰기는 시도되지 않았다.
"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을 텐데 굳이 내 글을 읽겠어? "
" 남들 흉내 내는 글에 불과하면 어쩌지? "
" 원래 해오던 라이프 코칭에 더 집중 하는 게 어때? "
출발선에서 또 머뭇거렸다.
이러다간 또 한해를 넘기겠다. 하나도 못 써보고.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밤에 일찍 자 줄 때 시간이 난다. 시간이 생기면 글쓰기 할 시간으로 남겨둔 시간임에도 책을 읽기만 했다. 즐겁지만 찜찜한 기분을 간직한 채로.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비교했다.
" 잘 쓰네. 어쩜 이런 생각과 표현을 했을까? " 감탄했다.
" 에이. 별거 아니네. 이정도 실력으로 글을 썼다고? " 때론 안도했다.
아이 낮잠을 재우다 브런치 글을 보았다.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워킹맘이 쓴 글이었다. 그 순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는 용기가 생겼다.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췄다.
" 5시간 6분 잘 수 있네. "
12시 즈음 알람을 맞추며 제발 내일부터 시작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숙제처럼 하려고 하는 내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오늘이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
새해 즈음부터 시작된 변화가 열정과 용기를 싣고 오늘에서야 글쓰기까지 오게 되었다.
오늘 아침 시작된 이 습관이 내 삶을 바꿔 주리라 확신한다.
나의 50살은 내가 꿈꾸는 모습 그대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내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글쓰기 공책을 마련하는 것, 글쓰기를 다 해야지만 책 읽을 자유를 허락할 것, 그리고 나의 자유시간 확보를 위해서 가족들에게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것.
2주가 지난 현재,
글쓰기 공책에 글을 쓰고 있고, 최선을 다해 그날 글쓰기를 먼저 하려고 하고 있다.
책은 아이와 놀아주면서 틈틈이 읽고 있다. 신기하게도 아이도 덜 징징댄다.
그저 내가 옆에 있는 것 만 으로도 안심이 되나보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졸릴 때도 많았는데, 책을 읽으니 졸리지도 않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기분도 좋다. 아이의 요구도 더 기쁘게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핸드폰이 아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좋다.
하루에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아이와 외출시간을 갖는다. 햇빛도 쐬고, 걷기 운동도 한다. 매일 코스를 변경하면서 나들이를 한다. 조금 멀리 가보기도 한다.
대신 집안일은 조금 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동안 집안일을 꾸역꾸역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이를 벗어나 집안일을 하면서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 이지만 이것마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의 하루가 쓸데없이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을 철저하게 챙기려고 한다. 특히 집안일과 양육에 관해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식사 전 식기 셋팅 및 식후 치우기는 각자 할 것. 식사준비를 너무 공들여 하지 않을 것. 그때 상황에 맞추어 하되, 힘들면 간단히 먹을 것. 주말에는 남편이 아이들과 두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줄 것. 그때 나는 책을 읽거나 외출할 것.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잠을 덜 자고, 덜 먹고, 많이 걸어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짜증도 덜 내게 되었고, 잔소리도 덜 하게 되었다. 내일 아침이 기대되었고,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지 설레기도 했다. 내 삶에 만족스러워지자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결국 내가 있어야 타인도 있는 것이라는 말이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