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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Jul 09. 2021

야, 내년에 서른인데 원룸은 탈출해야지

내가 원룸 전세 계약을 연장하기로 한 이유

얼마 전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집을 한 번 쓱 훑더니, 전세 계약이 언제 까지냐고 물었다. 올해 말쯤이면 끝나지, 시간 참 빠르다, 근데 나 여기 계약 2년 더 연장하려고. 묻지 않은 까지 속사포로 답해줬다. 그러자 친구는 내 답변이 좀 의외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야, 너도 내년엔 서른인데 원룸은 탈출해야지. 언제까지 원룸 사냐. 돈도 좀 모았잖아."


문득, 이 집에 이사 온 날 집주인 아저씨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가씨 올해 몇 살이라고 했지?"

"28살이요."

"어, 잘됐네. 이 집에서 2년 살고 결혼해서 나가면 되겠어."


나도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땐 2년만 살고 더 넓은 곳으로 가야지 생각했다. 물론, 지금까지 모은 돈에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으면 1.5룸이나 투룸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원룸 전세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다.



1. 퇴사가 마려워서...


내년이면 입사 5년 차가 되고 동시에 30살이 된다. 더 늦기 전에 퇴사하고 일본어 번역가이자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말하면, 프리랜서로 돈 벌어먹고 살겠다는 거다. 프리랜서가 되면 제대로 된 경력을 쌓기 전까진 모아 둔 돈을 야금야금 쓸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 연봉 정도로 벌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혹여나 자금 압박이 심해져 일을 그르치거나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고 싶진 않다. 성공적인 탈 퇴사러가 되려면 고정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 집은 전세 대출 이자와 관리비를 합하면 15만 원 정도, 전기료는 매달 4천 원 선, 난방비는 겨울에 아무리 많이 나와도 2만 원 선이다. 고정 지출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정도가 딱 좋다.



2. 넓은 집보단 문화 자본 축적이 시급해


예전부터 그림, 책, 여행, 뮤지컬, 시사 등에 해박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 역시 그렇게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내게 부족한 건 문화 자본이었다. 그래서 2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뮤지컬을 몇 차례 관람했고 소설 쓰기, 플라워 클래스 등 수업료에 매달 수십만 원을 썼다. 뮤지컬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고, 소설 쓰기 수업을 듣고 나서야 보이는 세계가 있었다. 일련의 문화 자본 축적 과정을 통해 느낀 건, 내겐 넓은 집보다 문화 자본을 축적하는 게 우선이라는 거였다. 내 통장이 화수분이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월급은 정해져 있다.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효용이 더 높을지, 그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3. 아직은, 마포구 못 잃어


내 재정 상태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1.5룸이나 투룸으로 이사하려면 마포구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마포구는 서울에서 집값이 높은 축에 속한다. 내가 마포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회사와 가깝기 때문이다.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는 것은 물론, 퇴근 후엔 집까지 걸어올 수 있다. 걸어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딱 걷기 좋은 코스다. 특히, 경의선숲길을 지날 때면 짙은 녹음 사이로 비추는 오후 햇빛을 볼 수 있는데, 그 다채로운 색감에 지루한 일상이 잠시 잊힌다.

 두 번째는 마포구에 모든 문화·편의 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근 후 듣는 번역 수업과 주말 글쓰기 수업, 가끔 참여하는 원데이 클래스 등 직장인 수업 대부분이 홍대와 신촌 부근에서 열린다. 마포구에 살면 수업 후 대중교통에 지친 몸을 싣고 먼 길을 돌아갈 일이 없다.




사실, 원룸은 말 그대로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집에 누군갈 초대하는 건 조금 버겁다. 갈색 장판 바닥에 좌식 테이블을 펴고 앉으면 한두 시간도 안 돼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난다. 초대한 나도, 초대받은 손님도 편치 않다.


그러나, 나 혼자 살기엔 아직 부족함 없는 게 사실이다. 우리 집은 9평 원룸인데, 안쪽에 길게 베란다가 있어 나름 공간 분리가 돼 있다. 그곳에 빨래를 널 수도, 큰 고무나무 화분을 둘 수도 있다. 낮이면 햇살이 집에 오래 머물러 키우는 식물마다 새 싹을 내고 밝은 기운을 준다.


서른인데 결혼 안 하고 원룸에 살면 어때. 나만 만족하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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