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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Aug 13. 2021

독립이 뭐가 좋아? 엄마랑 사는 게 편하지

독립으로 뒤틀린 가족 관계 회복하기

“너도 이제 생활비 50만 원을 내든가, 이 집에서 나가든가 둘 중에 하나 선택해!”


엄마의 예상치 못한 엄포가 독립의 계기였다. 미리 예고라도 해주지. 뒤통수를 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28살이 되도록 생활비 한 푼 내지 않고 얹혀사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양심 없긴 했다. 그렇지만 50만 원이라니. 그건 좀 센 금액 아닌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놀고먹기 빠듯한 월급. 50만 원은 좀 심했다. 그 뒤로 한 달간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계속해서 30만 원을, 엄마는 50만 원을 주장했다. 완고한 엄마 모습에 결국 내가 굴복했고 추운 겨울에 원룸을 보러 다녔다.


사실 본가도 서울, 회사도 서울이라 그간 독립할 이유가 딱히 없었고 본가에 사는 게 편했다. 엄마가 청소, 밥, 설거지 등 집안일을 거의 다 해줬고 나는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회사-집만 잘 다니면 됐다. 그래서 그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처음 독립하는 것도 막연히 두려웠다.


그런데 반강제로 독립해서 2년 정도 혼자 살아보니 좋은 점이 훨씬 많더라.  



소비가 더는 죄스럽지 않다


독립을 하고서야 눈치 보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비싼 옷이나 신발, 전자제품을 사면 꼭 집에서 '이건 뭐야? 새로 샀어?' 하는 질문을 받았다. '옷도 많은데 또 샀냐', '돈 아껴 써라'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 귀찮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참, 엄마는 이런 거 없었지' 하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었다. 나 혼자만 좋은 거 누리나 싶어서.


이건 맏딸이면 더 공감할 것 같은데, 해외여행 갈 때 가족 눈치를 좀 봤다. 내가 번 돈으로 휴가를 떠나는 건데도 ‘가족들 다 못 가본 미국을 나 혼자 가도 되나?’ 하는 생각에 괜스레 혼자 위축됐다. 그래서 여행을 마친 뒤 바퀴가 더러워진 캐리어를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되도록 조용히 들어와 빠르게 짐을 풀었다.


그런데 독립하니 여행 가고 싶을 때 가고, 사고 싶은 거 맘껏 사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 더는 죄스럽지 않다. 나는 내 욕망에 좀 더 충실해졌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이것저것 소비해보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취향은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었고 자연스레 내 삶의 경험치도 올라갔다.



독립된 ‘어른’으로 취급받는다


독립 전엔 생필품 구입, 공과금 납부 등 집안 살림에 필요한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나를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애’ 취급했다. 날 무시했다기보단 항상 챙겨줘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다 큰 딸 점심 도시락을 싸줄 정도였으니까. 나 역시 그런 엄마에게 많이 기댔다. 실제로 독립하기 전까진 전세 대출이 뭔지, 공과금 자동이체는 어떻게 하는 건지, 화장실 청소는 뭘로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가 날 애 다루듯 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독립하니까 오히려 생활 알짜 정보를 엄마보다 빨리 알 때도 생겼다. 그럼 엄마는 ‘이런 물건은 어디서 샀냐’ 거나, ‘집에 관련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냐’ 등 실생활에 관한 질문을 되려 내게 던졌다. 이런저런 대화를 몇 번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엄마가 날 독립적인 ‘어른’으로 취급해준다는 걸 느꼈다. 때서야 비로소 내가 세상 돌아가는  아는 어른으로서  모습을 갖춰가는  같았다.



당연한 존재에서 배려해야 할 대상이 됐다


본가에 살 땐 온 가족이 서로를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해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내가 집에 있기만 하면 엄만 내 의사와 스케줄에 상관없이 이것저것 잡일을 시켰다.


이전엔,


“오늘 강아지 데리고 병원 갔다 와.”

“어? 나 오늘 약속 있는데? 왜 그걸 이제 말해? (짜증)”

“아, 여기서 금방인데 지금 바로 갔다 오면 되잖아. (짜증)”


이런 대화가 잦았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당연하게 생각하니 대화할 때조차 배려하지 않았고 둘 다 기분 상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 살지 않으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언제 시간이 비는지, 지금 당장은 뭘 하는지 전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스케줄을 사전에 확인하고 일정을 조율해 약속을 잡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당연한 존재에서 배려해야  대상의 범주에 속하게 됐다. 이제야 가족 사이에도 서로 존중할 줄 알게 된 거다.




가족이 다 같이 한 지붕 아래 화목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론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약이 될 때가 있다. 내 독립은 어긋난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나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자유와 적절한 거리감. 독립은 이 두 가지만으로도 한 번쯤 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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