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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23. 2021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 하더라도

시골의 교통수단

내가 서울에 처음 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는 버스 시간표란 게 별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워낙 버스가 자주 오니까, 그냥 정류장에서 몇 분만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는 거였다. 고모가 시간표도 안 보고 집을 나서기에, 나는 버스를 놓칠까 봐 초조함에 몇 번이고 고모를 졸랐다. 버스 몇 시에 와요? 하고. 그럴 필요가 없었단 걸 그때는 몰랐다. 하루 서너 번, 읍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을 달달 외워야 했던 나에게 그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물론 버스에 올라타고도 서울의 버스 시스템이 이해가 안 되어서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버스가 그만큼 많을 수 있다는 게 당시 나에게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빠 출근길에 같이 등교를 했지만 중학생이 되자 등교시간이 달라져 버스로 등교를 해야 했다. 정확한 버스 간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읍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서너 번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버스 하나를 놓치면 반드시 지각이라는 거였다. 운이 좋아 동네 사람 차를 얻어 타는 날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좋을 경우였고,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버스와 달리기 시합을 해야 했다(나는 아침잠이 많다). 다행히 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 힘껏 달리면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넘어져 손가락을 바닥에 긁은 적도 있다. 나는 한 달쯤 반깁스를 해야 했다.


읍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서너 번 밖에 없었는데 서울 가는 버스가 세 번 있다는 건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이 버스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 타 도시에 간 다음, 거기서 기차를 타는 것보다는 버스 한 번만 타는 게 나았다. 비록 그게 5시간짜리 버스일지라도. 처음엔 사람들이 왜 장거리 버스 이동을 꺼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차에 타면 곧잘 잠에 드는 편이라 자고 일어나면 서울 도착, 짜잔. 하지만 졸업반이 되자 그런 꿈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몽롱한 기운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시계를 보면 절반쯤은 왔을까. 옴짝달싹할 수 없는 버스 안, 그 텁텁한 공기...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도 서울에 갈 땐 최선의 선택지가 여전히 이 버스라는 점이다.


서울에서 택시는 종종 버스의 대체재로 간주되지만 이곳에서 택시의 지위는 애매하다. 자기 차가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탈 이유가 없고,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버스시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카카오 택시보다는 행복택시 보기가 더 쉬운 동네다. 행복택시로 말할 것 같으면 버스요금으로 이용 가능한 택시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교통 소외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어르신들 위주로.


그러니까 한때 등교를 위해 손가락 인대가 늘어져라 뛰었던 과거가 있더라도, 서울의 눈부신 대중교통을 맛보고 온 나에게 이곳의 교통은 너무나 열악한 것이었다. 조금쯤은 옛날보다 나아질 법도 한데! 새벽부터 새벽까지 운행하는 지하철이 그리운 것도 아니었고, 시간표를 외울 필요 없이 잡아 타던 버스가 그립지도 않았다. 아니, 그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감히 바라지 않았다고 해야 맞겠다. 아무튼 언감생심 그런 건 꿈도 못 꿨지만 최소한 한 시간에 한 번이라도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귀향 직후에 나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도 집 안에 처박혀 있어야만 했다. 이 사태를 해결해 준 건 작고 하얀 마티즈 한 대였고, 그걸 갖게 된 뒤 나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시골에서 나다니기 위해서는 튼튼한 다리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바퀴 달린 것, 이왕이면 바퀴 네 개짜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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