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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17. 2021

당근마켓에 당근이 올라오는 그날까지

시골에서 쇼핑하기

나는 돈 버는 건 몰라도 돈 쓰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집에서 발 한 짝만 떼면 돈 나갈 곳 천지이던 서울을 떠나왔지만, 여기서라고 돈 쓰는 게 어렵지는 않다. 물론 백화점까지 거리가 멀다거나 서점이 없다는 정도의 문제는 있어도 다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자동차 한 시간 거리에 백화점이 있으니까 이 정도면 나들이 삼아 가기 딱 좋다. 더 가까웠다 한들 돈을 더 쓰기밖에 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근처에 마땅한 서점이 없는 건 아쉬워도 책을 주문한 다음날 저녁이면 대체로 내가 고른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식료품에 관해 말할 것 같으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수조를 들여놓고 회를 바로 떠서 판매하는 지역 마트가 있다. 근처 공단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의식해서 할랄푸드까지 갖추어 놓았다. 없는 것도 있지만 이런 게 있나? 싶은 게 가끔 있을 정도다. 고수는 물론이고 호박잎이 있더라니까, 글쎄. 그래도 대형마트와는 갖추고 있는 품목이 달라서 가끔은 타 도시로 가서 장을 본다. 아이스백 안에 보냉제를 가득 챙겨서, 냉장 양고기라든가 새우 같은 걸 사 오곤 한다.


도저히 대형마트에 갈 상황이 아닌데 갑자기 까망베르 치즈 같은 게 먹고 싶어지면, 컬리에 주문을 넣는다. 물론 샛별배송은 아니지만, 주문 다음 날 쯤엔 도착한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나라엔 택배가 닿지 않는 데가 없으니 웬만한 물건들은 다 온라인 주문으로 해결이 된다. 직접 보지 못하고 구입하는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겠지만 시골 살며 그쯤이야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마트 말고 물건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라면 시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엔 5일장도 선다. 장 서는 날짜를 깜박하고 읍내 중심으로 들어서는 날이면 붐비는 인파에 낭패를 보게 되니까 차를 몰고 다닐 땐 조심해야 한다. 걸어서 지나는 날에는 좀 더 여유가 있다. 물건 파는 사람도 많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주로 구경하는 사람 역할을 맡는다. 엄마 손을 잡고 구경을 다니던 어린 시절엔 붉은 대야에 담긴 가물치나 팔딱거리는 미꾸라지 같은 걸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지금은 화분 트럭들만 쏙쏙 골라 구경하다가 맘에 드는 녀석이 있으면 하나 둘 집어온다.


여기서는 웬만한 물건을 다 온라인으로 사야 하니까 시장처럼 면대면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일까? 직거래 기반의 중고거래 어플인 당근마켓을 처음 설치했을 때 설렜던 건. 그러나 그 설렘은 곧 옅어지고 말았다. 좀처럼 내 취향에 맞거나 번듯한 물건이 잘 올라오지 않았던 거였다. 뭐 인구도 적고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하며 나는 당근마켓으로 살림을 장만하겠다는 기대를 내려놨다. 그러고도 미련을 못 버려 습관처럼 들어가는 당근마켓 어플엔 정말이지 시골다운 물건이 올라오곤 한다. 가마솥이라거나 토종벌통 세트, 석류나무, 대나무, 더덕과 들깨 모종 같은 것들. 모내기하고 남은 모판 30개가 순식간에 팔린 걸 보고 내가 시골에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직접 생산한 각종 농산물이 올라오는 것도 물론이다. 죽순이라든가 칡, 더덕, 산딸기까지. 이 기세라면 당근마켓에 당근이 올라오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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