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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11. 2021

그저 맑기만 한 나날들은 없지만

시골의 공기와 하늘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도 그렇다. 마음껏 들이마셔도 매연 냄새가 나지 않는 공기라든지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빛이 내게는 당연하다. 남들보다 둔한 호흡기를 가진 나는 사실 서울의 매연 냄새도 미세먼지도 잘 느끼지 못했다. 가끔 고향에 돌아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탁, 하고 코가 트이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서울의 공기가 참 나쁘구나 하고 체감할 뿐이었다. 아예 이곳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런 감각을 느낄 일이 잘 없어서, 맑은 공기가 주는 상쾌함은 비 온 뒤에나 누리는 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의 공기가 마냥 깨끗하고 신선한 냄새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이른 아침 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퇴비공장의 냄새는 창문을 닫아걸게 만들고, 요즈음 맡을 수 있는 밤꽃 냄새는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썩 유쾌한 향기라고는 할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 근처에선 건축공사가 한창이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그다지 상쾌하지 못하다. 누구나 상상하는 그런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맡으려면 가까운 산에라도 가야 한다. 그게 5분 거리에 있다는 건 물론 시골의 장점이다.


뉴스에서 황사와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한창 떠들어댈 때 어느 정도 무관심할 수 있다는 건 시골 사람으로서 누리는 큰 특권이다(여기가 남부지역인 점도 한몫한다). 하늘에서 하늘색을 찾기 쉽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다행스럽다. 타 도시로 이동하면서 하늘 가장자리가 점점 흐리고 누런 색으로 채워지는 걸 보면 하늘색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그런 대도시에서는 조금 남아있는 하늘색도 매가리 없이 희미하다.


하늘을 밤에 바라보면 별이 보인다는 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이란 일종의 환상과도 같다. 현실에서는 비행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머나먼 곳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몽골이라든가, 나미브 사막이라든가, 아무튼 지금은 갈 수 없는 그런 곳들. 웬만한 시골에서도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만나기 어렵다. 드물게 구름이나 안개가 없는 날이어도 그렇다. 밤이 되면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축사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지상의 불빛은 천상의 별빛을 가린다. 용케 불빛이 없는 곳을 골랐더라도 산골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산이 시야를 좁게 만든다. 


나는 별 보기를 좋아해서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천문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장소를 엄선해서 관측회를 떠나긴 했지만 학생회관 옥상에서 더 자주 별을 봤다. 앞서 말했듯 별보기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대기오염 말고도 많아서다. 엄마의 시골집은 논에 둘러싸인 데다 집 앞에 농기계 수리점이 있어서 밤새 불이 켜져 있을 때가 잦았다. 유난히 피로한 퇴근길에 '난 힘들고 지칠 때 밤하늘을 봐, 그러면 별들이 날 위로해 줄 거야...'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지상의 불빛들이었다. 그러고는 허탈한 내 심정을 개굴개굴, 소리가 더 가라앉게 했다. 


사실 이 지역에는 꽤 유명한 천문 관측 장소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한 이삼십 분 정도면 갈 수 있을 듯하다. 그러던 와중에 풍력발전소를 세우는 바람에, 아이쿠. 풍력발전소의 깜박이는 불빛이 별 보기에 방해가 되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나는 산 너머 줄줄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후회한다. 미리 자주 가 둘걸, 하고. 내 기준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시골에서도 별 보기란 쉽지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전망이다. 읍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짓다 만 건물들과 개발 중인 택지의 풍경은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하늘이 맑은지 어떤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푸른 산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복도 창 밖으로 초록과 하늘색이 어우러질 때면 내가 여기 산다는 게 참 뿌듯하다. 그럴 때면 비록 반대쪽은 엉망진창이어도 이쪽이 아름다우니 괜찮다며,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곤 한다. 


시골이라고 언제나 맑은 건 아니지만 대도시에 비하면, 여기는 오늘도 대체로 맑습니다.


엘리베이터 앞 창문으로 보이는 무지개, 작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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