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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10. 2021

살았거나 죽었거나 어쨌든, 동물들

시골 살며 만나는 동물들

여기에는 소가 아주 많다. 인구수의 절반만큼이나 되는 소가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워낭소리>에서처럼 소가 쟁기질을 하는 광경은 볼 수가 없다. 내가 소를 보는 건 주로 동네 축사 앞을 지나갈 때다. 그렇지만 가끔은 들판에 묶여 있는 소를 보기도 한다. 풀밭 위에 누워 볕을 쬐고 있는 소들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한가해진다. 


농사에 쓰이지 않아도 농촌에서 소는 여전히 중요한 동물이다. 계절별로 소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건강하게 태어난 송아지를 보며 기뻐하는 건 순수한 애정이 있어서이리라. 물론 중요한 소득원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소를 대하는 농민들의 태도에는 여타 가축들과 다른 점이 있다. 자기네 소를 자랑하는 농민들을 볼 때,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시골의 대표적인 가축이 소라면 야생동물로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있다. 살아 있는 고라니를 본 건 한 번이고 죽은 고라니는 꽤 본 적이 있다. 살아 있는 고라니를 만난 것도 운전 중의 일이었으니까 고라니 입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나랑 마주친 셈이다. 멧돼지를 직접 본 것도 딱 한 번인데 물론 그건 죽은 멧돼지였다. 살아있는 멧돼지였다면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섰겠지. 그 멧돼지가 이장님 집 앞 냇가에서 발견되어서 마을이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라 다들 멧돼지의 사인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세웠더랬다. 다행히 검사 결과 돼지열병은 아니었다.


고라니나 멧돼지 말고도 산에 사는 짐승들이 길가로 내려올 때가 있다. 산속에 난 길을 운전하다 도로 위를 잽싸게 가로지르는 다람쥐 한 마리를 봤다. 이내 고양이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아, 고양이한테 쫓기는 중이었나 보다. 또 언젠가는 운전하다 보니 커다란 족제비 같으면서 꼬리는 풍성한 녀석이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족제비 비슷'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담비가 나왔다. 크기도 얼추 맞고. 그 이후에도 스치듯 본 적이 있는데 백 퍼센트 확신은 못해도 그건 아마 담비가 맞으리라는 게 내 짐작이다. 


이맘때 시골에서는 밤이 되면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내려앉는다. 시골에서 자랐다면 어릴 때 한 번쯤은 올챙이를 잡아다가 개구리로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테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친구와 함께 막 부화한 올챙이들을 몇 마리 채집해서 기른 적이 있었다. 여러 마리 중 단 한 마리만이 살아남아 개구리가 되어 주었다. 나는 그 개구리를 놓아줄 때 썼던 게 종이컵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은 세부 전공이 도롱뇽이었는데 그래서 과학실 한구석엔 도롱뇽 수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함께 알을 채집해 오기도 했는데 그때는 포획금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지금은 포획하는 건 불법). 알을 채집하러 갔는데 그게 우리 동네여서 얼마나 놀랐던지!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였다.


한편 시골에서 동물을 가장 발견하기 쉬운 장소는 어딜까? 바로 도로 위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의 버스 정류장 앞에는 냇가가 있었고 앞뒤로 논이 펼쳐져 있었으므로 자연히 개구리가 많았다. 비 오는 장마철이면 개구리들은 횡단보도 없는 도로 위를 떼 지어 건넜고 대부분이 지나가는 차에 치어 죽었다. 초등학생 때는 정류장 앞 도로에 널브러진 개구리 사체를 보는 게 두려워서 학교가 가기 싫었던 적도 있다. 여름엔 바싹 마른 뱀도 자주 목격된다. 고라니는 계절을 덜 타는 편이다. 나는 동물들과 살아있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다. 도로 위에 누워있는 모습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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