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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09. 2021

왜가리 아저씨, 농사는 잘 되시나요?

시골의 날짐승들

내가 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주변인들은 가끔 내게 새 이름을 물어보곤 한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가 어느 날 호들갑을 떨며 이 커다란 새는 뭐냐며, 거위가 원래 이렇게 날아다니냐며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나는 영상을 힐끗 보고는 답변했다. 그건 백로야, 하고. 여기선 백로가 발에 채일만큼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골에 살아서 좋은 점은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새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거다.


논에 물이 차오르고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논에 고개를 박고 있는 백로와 왜가리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 태연하고 당당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논 주인인가 싶을 정도다. 발에 채일만큼 흔하다고는 하지만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가까이서 보면 신기한 건 여전하다. 특히 그 무거워 보이는 몸집이(검색해보니 그래 봬도 왜가리의  몸무게는 1~2kg 남짓인 모양이다) 천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커다란 두 날개로 공기를 밀어 하늘로,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백로와 왜가리는 얼굴이 좀 험상 궂긴 해도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에 한몫을 한다. 


농촌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새라면 제비가 있다. 지금쯤 한창 육아에 바쁠 시기다. 우리 집은 아파트니까 당연히 제비집은 찾아볼 수 없지만, 엄마 집에 가면 제비가 마당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 찾아가면 가끔 제비가 낮게 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담대로라며 중얼거린다. 결혼 전에 같이 살 때는 제비가 자라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어설픈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전깃줄에 앉아 있던 아기새들은 얼마 안 되어 곡예비행도 거뜬히 소화한다. 그러면 일취월장한 그들의 비행 실력에 감탄하다가도, 금세 제비들이 떠날 거란 사실에 아쉬워했었다. 시골에서도 제비는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다행히 올해도 마당 전깃줄에는 제비가 앉아 있다.

전통시장에 둥지를 튼 제비, 이 곳 시장에는 제비집이 다수 있다


도시에서는 흔하지만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새도 있다. 바로 비둘기다. 농촌에는 대신 멧비둘기가 흔하다. 산비둘기라고도 불리는 이 새를 나는 꽤 좋아한다. 항상 암수 정답게 다니는데, 도시의 비둘기와 달리 눈빛엔 총기가 가득하고 깃털엔 윤기가 흐른다. 물론 도시의 비둘기가 꾀죄죄한 건 열악한 환경 탓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집비둘기를 한 마리 발견하고 말았다.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걸까? 어찌 되었든 집비둘기는 이 곳이 도시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그전까지 비둘기라고는 멧비둘기뿐이었는데. 나는 묘한 박탈감을 느끼며, 멧비둘기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비둘기와의 영역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기를. 그리하여 앞으로도 내 눈앞에 나타나 주기를.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집비둘기가 아닌 멧비둘기다.


몇몇 새들은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편이다. 마을에서 떨어진 진짜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가끔 장끼를 마주치는 날들이 있다. 그러면 속으로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야, 하고 생각한다. 옛날에야 훨씬 흔했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야생 꿩이라니! 90년대생인 나는 볼 때마다 신기하다. 외할아버지의 깃펜을 장식한 장끼 깃털을 본 이후부터 꿩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 그 화려한 색감과 광택이 도는 깃털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서양에 공작새가 있다면 동양엔 꿩이 있다. 유럽에 갔을 때 한 소도시에서 수컷 공작이 동네를 활보하는 걸 보았는데, 유럽에선 그런 경우가 흔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광경이라는 듯 그 새를 대했다. 나도 장끼가 동네를 쏘다니는 걸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엔 호반새도 있고 파랑새도 몇 번 보았지만, 내 눈으로 본 것 중 가장 귀한 새는 팔색조다. 팔색조는 천연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재청 사이트에는 '무지개와 같은 7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새' 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본 팔색조는 설명대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 새가 살아있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고양이의 소행이었는지 건물 유리창에 부딪힌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교적 형태가 온전했던 그 새를 어디에 묻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이 새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거라면, 차라리 내가 팔색조를 평생 못 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살아있는 새를 보는 건 순전히 기쁘지만, 죽은 새를 본다는 건 그런 안타까움이 있는 행위였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부쩍 길에서 새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새끼를 한창 길러내고 있는 새들이 짹짹거리는 게 듣기 시끄럽다가도,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와 눈이 마주치면 짜증 나던 마음은 단숨에 녹아내린다. 귀여우니 괜찮아. 운전하다 도로 옆을 보면 논마다 자리 잡은 백로와 왜가리가 보인다. 이 친구들은 귀엽진 않지만 크고 멋지다. 고개 숙인 왜가리를 보고 있으면 마치 모내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논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괜히 묻고 싶어진다. 왜가리 아저씨, 농사는 잘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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