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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07. 2021

시골에서 산다고 다 시골 사람은 아니다

시골의 이방인 이야기

시골에서는 시골집을 소유한 것만으론 그곳 사람이 될 수 없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반쯤은 재미로 직원들을 성골, 진골, 6두품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지역에서 태어났는가? 부모님도 이 지역 출신인가? 이 지역 학교를 나왔는가? 등등. 참고로 이 기준에 따르면 나는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충족하는데도 결혼 후에야 뿌리를 내린 기분이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집성촌에서 자라 항렬자 이름을 달고  곳에서 , , 고를 나올 필요까지는 없다. 이방인은 이방인 나름대로 시골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같은 성씨,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다른 취급을 받으면 가끔은 서운하겠지만 그건 어쩔  없는 일이다. 약간의 거리감있어서  좋은 사이도 있다. 우리 엄마를 보면 그렇다. 엄마는 나처럼 이곳에서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았고 여기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신다. 물론 여기서  세월이  나이 정도 되니까 그것도 무시할  없다. 농산물과 마을행사 찬조금이 오고 가는 틈에 우정이 싹트고 원활한 시골생활이 피어난다.


외딴 농촌 지역인 이 곳에선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본다. 주로 동남아시아 여성들이다. 단어의 뜻으로만 본다면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걸맞을 그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대체로 가족의 가업인 농업을 잇고, 가끔은 읍내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내이면서 며느리로서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 이 곳에서 일한다. 곧 도시로 떠나버릴 청년들과 비교한다면 쉽게 그들을 이방인이라 치부할 수 없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올라간 서울에서는 대부분이 이방인이어서, 오히려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었다. 너 어디서 왔어? 란 질문은 일상적이었고 거기엔 배타적인 뉘앙스가 없었다. 억양을 듣고 내 출신지역을 맞추고선, 신기해하며 다 같이 까르르 웃곤 했었다. 그래도 동기 언니 중 한 명이 서울 사투리를 쓰는 게 조금은 부러웠다. 나도 서울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대대로 서울 사투리를 쓸 만큼 오래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는 내내 표준어를 구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내 출신지가 억양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은 마음 놓고 사투리를 쓴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저것 섞여서 영 이상한 말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중엔 타 지역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여기 살던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에서 사투리가 출신지를 알려 주는 지표였다면 여기서는 이방인 여부를 가리는 단서가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보다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게 더 중요하다. 근처 지역 사투리를 쓰면 그 점에서 유리하지만, 옆 동네 사투리와의 미세한 차이까지 구별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말투는 나오는 대로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다. 딴 동네 사투리를 쓰는 이장님들도 있다.




등록기준지가 이 곳이 아니어도, 결혼이 아니어도, 농사를 짓지 않아도, 말투가 달라도, 학교를 이 곳에서 나오지 않았어도 여기 사람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더라도 이방인으로나마 잘 살아가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랬으니까. 대신 시골의 오지랖 넓음을 받아들일 것. 인사는 언제 어디서나 빼먹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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