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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04. 2021

나도 성씨가 같았더라면

시골의 혈연 중심 사회

어린 시절, 나는 이방인이었다. 세 살 때부터 동네에서 자랐어도 그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비단 부모님이 농사를 짓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도, 우리의 조상도 이 곳에 없었기에 우리 가족은 항상 마을 속에서 완전히 섞이지 않고 다른 부류로 취급되었다. 우리 중 가장 마을과 동떨어져 있던 건 아빠였다. 아빠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온전히 아빠의 의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는 동네 애들과 종종 어울려 놀았지만, 날 대하는 그 애들 부모님의 시선에는 약간의 조심스러움 같은 게 섞여 있었다.


그맘때 나는 베스트셀러였던 조선왕조실록 책을 심심할 때마다 펼쳐서 왕실 족보가 그려진 페이지를 보는 걸 좋아했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얽히고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가 그렇게 흥미로웠다. 어릴 적 살던 동네 근처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씨로 나뉘었는데, 내 동네 친구들도 대체로 그 성씨에 속했다. 그러니까 마주치는 마을 어른들은 사돈의 팔촌도 아니고 진짜로 7촌쯤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만일 그러라고 한다면 그들에게도 계보도를 그려줄 수 있을 터였다. 나에게도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계시거늘, 내가 그 성씨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 곳의 계보도 속 그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어서 나는 쓸쓸했다.


대학 진학 후, 이사 온 마을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못 보던 젊은 애가 동네를 돌아다니면 어르신들은 어느 집 자식인지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뉘시냐 묻기에 무심코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갸우뚱하신다. 이 동네 성씨가 아닌데? 하는 눈빛. 아차, 어머니 성함을 말씀드리면서 부연설명을 한다. 저어기 뭐 하는 집 딸이에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신다.


출생신고지에 따라 부여받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도 불구하고, 영영 이방인으로 남을  같았던 나의 인생은 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00 00마을 김씨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게  것이다.


결혼   명절에 나는 큰집에 들렀다가  마을에서 제일가는 어르신 댁에도 찾아뵈었다.  마을의  씨들이  모여 절을 하는 광경은 실로 진풍경이었다. 그다음 차례로는 마을 바로 뒤의 선산에  성묘를 했다. 내게 성묘란 국도변 외딴 산기슭에서 하는 것이었는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선산이라니. 그때 나는 내가  집안 며느리로서  지역 계보도의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실감했다.


태어난   30 만에 비로소  지역 사람이  것이다.



Photo by Eilis Garv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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