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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May 28. 2021

오월의 잎사귀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식물 이야기

예전에 누가 나에게 일 년 중 어떤 달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답할 말이 달리 없었지만, 얼마 전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나는 5월, 연녹색 이파리가 돋아나 햇빛 아래 반짝이는 계절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그즈음에는 아무 이유 없이도 내 마음이 행복으로 벅차오르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유독 아름답게 들린다는 사실을.


5월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도 나는 이 계절에 피는 하얀 꽃들을 사랑했다. 청계천 가로수로 심겨있던 이팝나무의 낭창한 가지 위에는 소복이 하얀 꽃잎이 얹혀 있었다. 인문관 건물 3층 창가 자리에 앉으면 높이가 딱 맞게 자란 아카시아가 창 바로 앞으로 보였고, 생울타리로 심은 쥐똥나무의 작은 꽃에서는 아카시아와 비슷한 향이 났다. 들판 여기저기의 장미 비슷한 식물이 찔레꽃이란 걸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깨우쳤던 날은 기쁨으로 가득 찼었다.


세상에는 다채로운 꽃들이 있지만 꽃의 색상 중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하얀색을 고르고 싶다. 흰색만큼 잎사귀의 초록빛과 더 잘 어울리는 색이 있을까. 오월의 햇볕 아래서 흰 꽃은 더욱 화사하게 빛나고, 녹색 이파리는 한층 더 반짝이며 그 생명력을 과시한다. 얼마 전 분갈이를 하려고 고심해서 산 새 화분이 결국 흰색인 것을 보면 내 눈에 녹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흰색임이 분명하다.


한편 5월 하면 신록의 계절이 아닌가. 새 이파리의 연하고 보드라운 질감은 매년 나를 설레게 한다. 잎사귀 너머로 해가 비칠 때에 더욱 맑아지는 연둣빛을 보면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나무 한 그루 속에 새로 돋아난 연두색과 먼젓번에 난 진한 녹색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 잠깐이다. 나는 이 시기의 대추나무 잎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앙증맞은 연녹색 이파리가 반짝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괜히 만져보고 싶어 진다. 실제로 나뭇잎을 쓰다듬고 싶어지면 회양목을 찾아보면 된다. 작고 동그란 잎사귀들은 새로 난 직후에 더욱 부드러워서 만지는 재미가 있다.


새로 나는 잎사귀들이 모두 연두색인 건 아니다. 붉은빛이 도는 경우도 꽤 많다. 홍가시나무 같은 경우 새순이 붉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단풍나무도 품종에 따라 새순만 붉은빛이 도는 것이 있고 배롱나무 잎도 새로 나는 것은 붉은 기가 돈다. 색이야 어떻든 새 잎사귀는 다들 귀엽다.


얼마 전 장날 트럭에서 플라스틱 화분에 심긴 아주 작은 뱅갈 고무나무 화분 하나를 사 왔다. 플랜테리어 열풍에 동참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앙증맞은 자태에 사로잡혀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가격도 저렴하기 그지없는 단돈 오천 원! 가격을 보면 짐작 가능하듯 나무는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에 불과하다. 그래도 언젠간 내 키 반만 한 나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김칫국을 마셔 본다. 새 잎사귀랑 헌 잎사귀 색이 별다르지 않은 이 친구는 오늘도 돌돌 말린 잎을 새로 피워 내느라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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