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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May 28. 2021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다

브런치북에는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

대학교 앞 자취방을 그대로 두고 본가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내 앞날은 서울에서 계속되리라 생각했다. 자취방 계약이 끝나기까지는 조금 남았고 나에겐 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웬걸, 어찌저찌 고향에서 취업이 되고 말았다. 출근시간 지옥철을 타고 광화문 소재 빌딩 어딘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150만 원짜리 중고 마티즈와 함께 시작하는 시골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읍내에서도 차를 타고 들어가는 골짜기였으나 귀향했을 무렵에는 본가가 읍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후였다. 시간도 거리도 삼분의 일이 줄었다. 그러나 걸어서 읍내까지 다닐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어서, 서울에서 내려온 직후에는 상당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좋게 말하면 전원생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유배생활이나 다름없던 그 시절을 구원해 준 건 작고 하얀 마티즈 한 대였다.


장롱면허 딱지를 막 떼고 시골길을 누빌 수 있게 되자 나의 생활범위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래 봐야 가는 곳이라고는 도서관 정도였지만, 초코우유 하나 사 먹기 어려운 생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골생활에 나름대로 재적응을 해 가며 직장을 다녔고, 몇 년 후 결혼을 하면서 내 주거지는 또 읍내로 옮겨지게 된다. 신혼집을 꾸린 곳은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살게 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일하는 입장이 되니 학교와 집만 반복해서 오가던 어린 시절과 달리 시골살이의 보이지 않던 측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인데 최근에서야 깨닫게 된 것도 수두룩하다. 밭에 심긴 마늘과 양파는 생긴 게 이렇게나 다른데, 어떻게 지금까지 둘을 구분할 생각도 없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논밭을 지나다니면서 말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서울 살던 시절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나의 행복은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며 앞으로도 잘 지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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