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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May 28. 2021

반려식물의 수명

언젠가 너로 인해

밴드 가을방학의 노래 중에는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가 있다. 아주 작은, 눈도 못 뜨는 강아지를 데려오면서 먼 훗날 그 강아지로 인해 아주 슬퍼하게 되리란 걸 예감하는 그런 노래다. 나는 강아지든 고양이든 반려동물이라 할 존재를 길러 본 적도 없으면서 이 노래를 듣기만 하면 눈물을 찔끔 흘렸더랬다. 난 아마 이별이 슬퍼서라도 동물은 못 키울 거야.


그리고 그 곡이 나왔을 무렵, 학교 캠퍼스에는 단풍나무 새싹들이 하나 둘 돋아나고 있었다. 누가 심지 않아도 오래된 나무들 아래서 삐죽삐죽 솟아오르던 단풍나무 새싹이 얼마나 귀여워 보였는지 모른다. 다 자란 잎은 그렇게 특이한 모양이면서 떡잎은 너무도 평범하게 생겼다는 사실조차 특별하게 느껴졌다.


반려동물이 안 된다면 반려식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풀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무의 수명은 나보다 훨씬 기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가 죽으면 내 후손이 대대로 물려받으면 되니까. 알아보니 마침 단풍나무는 분재로도 많이 키우는 수종이라 그 길로 학교 앞 다이소에서 화분을 사고, 인적이 뜸할 때를 틈타 개중 예쁘게 생긴 새싹 하나를 옮겨 심고는 '홍이'라 이름 붙여 주었다.


새 잎이 막 돋아날 때는 붉은색이었는데 이내 초록빛으로 변했다. 얼마 후엔 매달고 있던 떡잎도 시들고 본잎 두 쌍만 매달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각별했다. 태어나서 처음 키워보는 나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잎을 더 달고 가지를 많이 내어 나보다 오래오래 이 세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가을이 되면 잎을 붉게 물들이고 떨구었다가 봄에 다시 새 잎을 피우길 바랐다.


2013년 9월 7일의 모습

매일같이 새로운 잎이 돋아날 기색이 없는지 살핀 끝에 여름이 되어서야 손바닥 모양의 잎 두 개가 새로 올라왔다. 원래 달고 있던 잎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어서, 줄기가 눈에 띄지 않게 굵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살아있긴 하구나 생각하던 차였다. 그 작은 연둣빛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겨울이 되자 잎을 모두 잃고 성냥개비마냥 꽂혀 있던 홍이는 내 걱정과는 달리 이듬해 3월, 무사히 두 쌍의 잎을 내어 주었다.


그러나 나무 새싹을 번듯한 나무로 키워내는 건 변변치 못한 주거환경을 가진 자취생에게는 너무 큰 꿈이었던지 그 해 여름에 화분은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사 간 자취방에 볕이 안 들어서, 옥상 땡볕에 너무 오래 내놓았던 게 문제였을까? 지금에 와서는 알 수가 없다.


언젠가 이별로 인해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기르기 시작한 반려식물의 이야기는 결국 새드엔딩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요즘도 봄이 되면 근처 단풍나무 아래를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면 꼭 새싹 몇 개쯤은 발견할 수 있다. 어쩌다 한 그루 정도는 내가 기르던 시절의 홍이보다 훨씬 크게 자라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감상에 젖게 된다. 내가 그때 학교에서 파내지 않았더라면 홍이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살아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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