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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01. 2021

드라이브, 그리고 길가의 나무들

내게 드라이브란 곧 나무 구경이다. 결혼 후 조수석에 더 자주 앉게 된 나는 이제 마음 놓고 창 밖을 본다. 그리고 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에 매번 매료된다.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 사이에서 나무들의 형태를 알아볼 때, 지난달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때 나는 마음이 들뜨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4월 벚꽃길 아래서 느끼는 기분을 나는 항상 느끼며 지낸다. 물론 겨울은 빼고. 


벚꽃이 지고 나면 가로수들은 연둣빛 이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약간 늦게 이파리를 내는 이팝나무의 새 잎은 처음엔 하늘을 향해 나 있어 삐죽삐죽 귀엽다. 홍가시나무의 새빨간 새순은 햇빛을 머금으면 더욱 밝게 빛난다. 새 잎이 연두색으로 나는 때에는 무슨 나무이든 아름답게 보인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초록이 무성한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나무마다 제각기 다른 색으로 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샛노랗고 새빨간 은행과 단풍, 그 중간의 오묘한 색을 내는 벚나무 잎과 가을답게 갈색으로 변하는 나뭇잎들까지.


차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무들이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가 이내 스쳐 지나면서 각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하나의 길을 따라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데서 오는 감동이 있다. 내게 드라이브의 진정한 묘미란 그런 것이다.




나무 박사 비슷한 것이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가진 내가 드라이브를 즐기는 방법은 또 있다. 창 밖의 나무들을 보면서 저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짐작해 보는 것이다. 차의 속도가 빠르니만큼 한 나무를 관찰할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는다. 그 짧은 틈새에 주로 전체적인 수형과 빛깔, 잎의 실루엣 등을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대신 기회는 더 있다. 이번 나무를 보고 모르겠으면 다음 나무를 보면 된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다음 나무를. 가로수란 같은 종류의 나무를 나란히 심기 마련이니까. 심혈을 기울여 관찰한 결과 답을 얻게 되면 그렇게 재미가 있다. 아하, 잎의 광택과 열매를 보니 이건 먼나무구나.


국도 드라이브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은 가로수뿐만이 아니다. 도로 근처 과수원에서 무얼 심었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수원에 심긴 나무들은 과일의 특성에 따라 수확을 하기 쉽도록 가지치기를 하기에, 수형만 살펴봐도 대체로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잎이 연둣빛으로 광택이 돌면서 지상 1m쯤 높이에서 갈라지기 시작하면 감나무. 중심 줄기는 끝까지 세로로 쭉 뻗어 있고 곁가지는 줄기와 수직으로 나 있으면서 잎사귀 광택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은 사과나무. 포도나무는 촘촘히 설치한 그물 위로 가지가 수평으로 놓이도록 기르니까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잎 모양도 손바닥 모양을 좀 닮아 다른 과일나무들과는 차이가 있다.


한편 나에게는 나무 농장을 만들고자 하는 장래희망도 있었는데, 이 꿈은 현실적인 문제로 일찍이 포기한 바 있다. 그래도 마음속엔 언젠가 나무 몇 그루 심을 땅을 얻고야 말겠다는 꿈이 있다. 다 읽은 책은 금방 되팔거나 정리하는 편인데도 '나무 부자들(실전편)'이라는 나무 농사 책은 아직 내 서가에 고이 꽂혀있다. 그런 만큼 국도에서 나무 농장을 보면 마음이 한층 설렌다. 가로수를 주로 기르는 농장도 있는가 하면 각기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잘 전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내 심장을 가장 뛰게 하는 건 묘목들을 심어 놓은 밭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묘목 밭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게 된다. 내 키보다 작은 저 어린 나무들이 곧 크게 자라, 어디로든 가서 긴 세월을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하면 언제고 감상에 젖는다. 관련글




나는 드라이브를 참 좋아하지만 늦가을이 지나 낙엽이 다 떨어지고 난 시기의 드라이브만큼은 즐기지 않는다. 겨울에도 나무들은 제 자리에 서서 계절을 버티고 있는데, 나는 헐벗은 나뭇가지를 마주하는 게 속상하다. 수피 도감도 있고 겨울눈 도감도 나와 있는 걸 보면 겨울에도 나무 보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건 분명하지만, 어째 나는 그렇게는 안 되나 보다. 한겨울 마른 가지 속에서 약동하는 생명력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힘이 나에게는 없다. 내 눈엔 그저 앙상한 가지로 보일 뿐이니까. 그래도 겨울눈이 부풀어 올라 통통해지는 때가 오면, 그제야 나는 봄이 왔음을 느끼며 드라이브의 계절도 돌아왔구나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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