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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ul 14. 2019

어딜 가든 여름이 보인다

그동안 참 모르고 살았던 것들

하루 절반 가량을 회사에서 보내던 때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동안,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떠드는 동안, 어쩌다 미팅이나 외근 때문에 나갈 때 정도가 낮 시간의 야외 활동이었다. 그때도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오늘 가서 무슨 이야기 해야 하지?' 같은 생각을 하거나, 누군가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을 거다. 물론 가끔 건물들 사이로 빼꼼 보이는 하늘이 예쁘다거나 눈이나 비처럼 확실한 기상 현상은 파악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시간대별로 집에 드는 햇빛의 변화가 보인다. 예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이른 오후 거실 베란다 또는 늦은 오후 침실에서 찍어야 한다. 저녁땐 옆 건물 사이로 빼꼼 노을 지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월세가 생활비 중 가장 큰 지출 항목인데, 그동안 절반밖에 집을 못 즐겼다 싶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다른 동네 구경을 가기도 하지만, 목적 없이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날도 있다. 길냥이를 마주치면 가방에서 사료를 꺼내 놓아주고, '다음에 가봐야지'하고 가게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면서.


어딜 가든 이상하리 만큼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오늘 하늘은 어제보다 더 파랗고 구름이 적네, 저기 빛 부서지는 거 예쁜 거 봐, 여기저기 해당화가 피었네, 저 집 앞 화분들 다 잡초인 줄 알았는데 꽃 화분이었네... 'OO에 OO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목적이 사라지니 엄청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다닌다.


새삼 계절의 풍경이라는 게 이렇게 확실하다는 걸 알았다. 하늘의 색깔도, 햇빛의 강도도, 바람에 묻어있는 냄새도, 주요 색깔도 다 다르다. 내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그 시간 동안에도 매년 '지금은 여름이야!'라고 성실하게 주장하고 있었을 텐데 참 모르고 살았다. 요즘엔 어딜 가나 여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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