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내린 커피 한 잔
하루에 한잔, 평일에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이 있었나? 매일 1900원 또는 2500원짜리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출근했고, 몇 달 동안은 집에서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싸갔다. '커피를 좋아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피곤함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리기 위한, 하루를 버티기 위한 의식이었다.
하루를 버티기 위한 커피가 필요 없어지니 커피를 찾는 일이 줄었다. 가끔은 아침(이랄지 점심이랄지)에 일어나서 씻지도 않은 상태로 커피를 내려 거실 소파에 앉는다. 식물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전날 읽다 만 책장을 펼치기도 하고, 메모장을 열어 끄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달달한 디저트를 앞에 두고 커피를 내리기도 한다. 역시 커피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 숨은 의미는 그때와 다를지라도.
동네 공방을 찾아 핸드드립 수업을 들었다. 2시간 동안 드리퍼의 종류와 특징을 배우고 드립 실습을 하고, 간단한 정보부터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까지의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핸드드립 할 줄 알면 좋겠어’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간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었고,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난 분명 가는 물줄기로 가운데부터 원을 그리려고 했는데, 왜 물이 쏟아지듯 많이 나오고 시작점이 가운데도 아닌 데다 원을 한 번에 못 그리는가) 내 움직임으로 커피를 내리는 재미를 알게 됐다. 같은 원두를 써도 드리퍼 종류와 내리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커피가 되는 것도 신기했고.
꽤 신이 나서 다음날 나가서 핸드드립에 필요한 도구들을 몽땅 샀다. 드리퍼, 서버, 드립팟, 핸드밀, 필터.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버튼을 눌러 마시던 커피를 드리퍼에 필터를 끼우고, 핸드밀을 돌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배웠던 걸 떠올리며 내 손을 움직여 핸드드립으로 완성했다. 같은 원두인데도 머신으로 내릴 때 약했던 산미가 확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같은 원두를 같은 도구로 내려도 사람마다 다른 커피가 된다는 걸 체험하며 “기계가 많은 것을 하는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는 게 매력적이네요.”라고 말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계보다 사람이 낫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라는 게 매력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