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실례가 안 된다면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같은 업계라고는 하지만, 사실 제가 그동안 했던 거랑 결이 많이 달라서요.”
가끔 헤드헌터에게 전화를 받는다. 경력직이 흔치 않은 업계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직 중이 아닌 나에게까지 연락이 오는 걸 거다. ‘이거다’ 싶으면 도전할 마음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서로 시간 낭비일 테니 거절한다. 보통은 거절 의사에 더 이상 답이 없거나, “다음에 또 좋은 기회로 연락드릴게요.”로 마무리되는데 이번엔 달랐다.
“본인과 결이 맞는 회사를 찾다간 구직 활동 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외부에 노출이 안 되어 있어서 그렇지 대부분 기업엔 나이 제한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동종 업계에서 3N살 이하의 경력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안드린 A사는 다행히 나이 제한이 없기에 꼭 지원해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정중한 메일이었지만, 내 얼굴은 이미 벌게져있었다. ‘제가 먼저 연락해서 회사를 찾아달라고 말씀드렸나요? 이 나이의 저를 받아준다고 하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무조건 지원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건가요? 지금 저를 설득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협박하시는 건가요? 회사 소개를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라고 밖에 못하신 분이 저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시네요.’ 마음속에 여러 문장이 쏟아졌다.
결국 답장은 하지 않았다. 똑같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나보다 더 화를 냈다. “그거 협박이잖아? 여기 아님 갈 데 없을 거라는 거야 뭐야. 그 사람이 너를 얼마나 안다고 그래? 그나저나 경력이 나이 안 먹으면서도 쌓을 수 있는 거였어? 이상한 사람이네 진짜.”
생각만 하고 내뱉지 못한 말들을 대신 소리 내어 말해주는 걸 듣고 나자, 그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가 정말 지원하기를 바라셨다면, 협박처럼 들리는 말을 하는 대신, 그 회사 정보를 좀 더 알려주면서 설득하시지 그랬어요. 조금만 더 찾아보고 전화하셨어도 ‘강남구에 위치한 회사입니다’라는 것보다는 더 많이 알려주실 수 있었을 텐데요. 제가 회사 정보 좀 찾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니까 일단 지원부터 해보라고 하셨죠? 이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지원하겠다고 할 줄 알았다면, 그건 헤드헌터로서 나태했던 거 아닐까요? 아, 아니에요. 나이 어린 경력직을 원하는 그 회사들이 잘못한 거겠죠. 그래도 괜찮은 이 세상이 이상한 거겠죠. 그 사실을 다시금 깨우쳐주셔서, 이런 세상이라 제가 불안해야 한다고 일부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