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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16. 2021

시골에 살아서 좋은 점

아이의 고향 만들기

 경기도에 살면서 시골에 산다고 당당히 말하긴 좀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아파트 바로 옆이 온통 논밭이어서 이맘때면 구수한 퇴비 냄새가 올라오고 길을 지나는 경운기를 쉽게 볼 수 있으며 아파트 사이사이에 자리한 농가들에서 닭들이 홰를 치며 소리 높여 우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는 시골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특히 어릴 적부터 외가댁이나 친가가 모두 서울이었던 탓에 제대로 흙을 밟고 놀아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지금 사는 이 시골냄새 폴폴 나는 동네가 '고향'이라는 이미지의 실사판 같다.


 땅값이 저렴하고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색이다 보니 이 근처에 있는 카페들은 대부분 커다란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집도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카페가 있다. 아이들이 나비를 잡고 트램펄린에서 방방 뛰며 마음껏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농장형 카페.

 물론 한 달에 며칠짜리 전원주택러인 우리 부부는 이런 드넓은 잔디마당을 보면 감탄을 하기보다 '잔디 깎으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이렇게 예쁜 잔디마당을 갖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움직여야 했을지 알고 있기에 이 카페 주인의 바지런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서 5분만 나와도 이런 곳에 앉아 풀벌레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맛난 차 한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니... 이 동네가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주말 관광지인 양평과 양수리가 가깝고 춘천으로 가는 골목에 위치한 우리 동네에는 저렴하고 맛난 음식을 파는 맛집들이 많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주말이라고 큰맘 먹고 와야 하는 맛집이 바로 동네에 있으니 외식을 하는 주말엔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춘천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단골 닭갈비집과 연예인들도 원정을 온다는 짬뽕집, 주말엔 항상 줄을 서야 하는 숯불 고깃집과 북한강 근교에 있는 메밀면 집까지... 주말의 먹는 즐거움이 평일의 장거리 출퇴근에서 오는 고단함을 조금은 덜어준다.  


 3일과 8일이면 제주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오일장 선다. 나름 이 근교에선 꽤 큰 장이어서 장이 서는 날만 되면 읍내 곳곳은 자동차들로 꽉 들어찬다. 우리는 지난번에 한번 다녀온 후로 다시 한번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드디어 지난번에 눈도장 찍어놓은 포장마차 안에 자리를 잡고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잔치국수에 묵사발, 녹두전, 떡갈비까지 마음껏 시켜본다. 비록 날이 더워 곧 땀범벅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시장의 음식을 먹다 보니 한참 잊고 있던 삶의 활기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시장표 잔치국수

 아이에게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이 시간이 나쁘지 않은가 보다. 더워서 얼굴이 벌게졌는데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꼼짝 않고 앉아 감칠맛 최고인 시장표 잔치국수를 국물째 들이켠다. 


 내가 이렇게 시골살이를 정겨워하는 것은 아마도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아파트 살이를 하며 자란 데다 친한 친척 중 그 아무도 시골이라 부름 직한 곳에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싶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푸짐하게 가득 차려진 시골밥상과 푸근한 온정이 넘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티브이에서만 보았으니 시골살이란 나에게 뭔가 로망 비스무리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에게 자주 산과 바다를 보여주고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기를 쓰고 오름을 오르려고 하는 것도 내가 가져보지 못한 자연과 함께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다. 하지만 어쩌면 매일 할머니의 9첩 반상을 받으며 살고 있는 아이에게 더 이상 포근한 고향의 기억 따윈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태어나자마자 이 곳에 와서 10년을 산 아이가 후에 기억할 고향이 더 정겹고 더 푸근한 곳으로 남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일 그 시간을 위해 오늘도 아이와 손잡고 시골길을 걷고 장에 가고 잔디밭에서 뛰놀며 아이의 고향 추억 쌓기에 매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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