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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r 22. 2023

사람 보는 눈이 인생의 허들을 내려줄 수 있지만…

성장통을 겪지 않아 미성숙한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분들이 참 많구나 싶고 그에 비해 나는 평탄하고 수월하게 살았음을 깨닫고 이래서 작가가 될 수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비교적 인생을 편안하게 살았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선량하고 유쾌한 부모님 슬하에서 나고 자란 인생 최고의 행운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거라는데 나는 어린 시절뿐 아니라 애물단지가 된 중년이 되어서도 부모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살았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선구안이다. 어려서부터 사람 보는 눈이 남달랐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뭔가 수상하다 싶으면 재빨리 피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다. 이런 본능은 학교 다닐 때도 유용했지만, 직장에 내던졌을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겉으로는 순하고 멀쩡한데 속내가 수상한 인간이라는 걸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감지해서 미리 경계 태세를 갖추는데 그런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니나 다를까 본색을 드러내며 업무적으로 대형사고를 치거나, 인간관계를 헤집어 놓는 일을 저질렀다. 


이렇게 사람 보는 안목이 재능의 영역 수준에 이른 나도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일을 몇 번 겪은 적이 있지만 말 그대로 뒤통수 살짝 맞은 정도였다. 브런치 작가분들이 겪은 인생의 굴곡에 비하면 먼지 같은 수준이라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사람 보는 눈이 인생 난이도를 얼마나 낮춰주는지를 잘 아는 이유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인생을 살만큼 살고도 사람 보는 눈이 0에 수렴하는 사람이 있어서다. 


그는 정확하게 나와 정 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자기한테 조금만 잘해줘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만큼 충성을 다한다. 여러 번 쓰라린 배신을 당하고, 내가 나서 여러 차례 주변 정리를 해준 적도 있지만 사람 좋아하고 홀딱 빠지는 게 배냇병인지 도무지  개선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주변에서 그저 사람 하나 잘못 봤을 뿐인데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일을 종종 본다. 그런 과정에서 인생을 배우고, 교훈을 얻으면 다행스러운 일인데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사람 보는 눈이 예민한 나는 이 나이까지 인생의 굴곡이란 걸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 같다. 타인에 대한 주의력이 너무 과해서 좋은 사람을 떠나보낸 씁쓸한 경험도 있다. 전반적으로 인생을 사는 기조는 무모할 만큼 용감한 편인데 어쩐지 사람을 만날 때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올인이 되지 않는다.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처럼 인생 여기저기 숨겨진 부비트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아왔는데 살다 보니 성장통 같은 걸 겪지 않아서 그런지 어느새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미성숙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 살아온 내가 겪은 인생 최대의 고비는 부모님 두 분이 일 년 사이 세상을 떠난 후 지금 겪고 있는 상실감이다. 시간이 지나도 슬픔이 가시지 않고 가슴이 저리고 부모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내 인생을 빛나게 해 준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내 인생은 빛을 잃었고, 행복의 셔터가 내려진 문 앞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다. 


확실하고 강력한 내 편이 있어서 타인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쌓을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이제 와서 별 수 있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내가 나를 책임지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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