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람들이 에어컨을 쓰기 시작한다면…
2004년 여름 <투모로우>란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여름 시장을 겨냥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지구 전체에 빙하시대가 닥치면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린 내용이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영화관에서 온 세상이 얼어붙어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영화가 현실로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몇 년 동안 365일 여름인 나라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해서 맞이하는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예전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장마는 여름이라는 생각은 이제 오래전 상식일 뿐 봄에도, 가을에도 며칠 동안 집중호우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년 어린이날 펼쳐졌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잠실 더비가 매치업이 고정된 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우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린이날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다음날까지 거의 저녁때나 되어서야 비가 그쳤지만 여전히 강한 바람과 찬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5월 둘째 주부터 다시 평년 기온이 회복되고 초여름 더위가 시작된다는 예보와 함께 올여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을 들으니 전기요금 인상은 기정사실인데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4월 말부터 시작된 동남아시아의 폭염 소식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 라오스, 미얀마 등은 봄철임에도 이미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태국 북서부 지역은 45.4도를 기록,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것이다. 엘니뇨(해수가 뜨거워지면서 기온이 높아지고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는 보통 6~8월 여름에 발생하지만 올해는 태평양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지난달부터 급상승한 탓에 이례적으로 빨리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여름 이상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던 남유럽 역시 4월 말에 이미 기온이 40도에 육박해 올여름도 더위와의 전쟁을 치를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나라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는 0.97대. 통계상으로는 한 집당 한 대가량 에어컨이 있는 것에 반해 유럽은 에어컨 보급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가정의 5%, 독일 3% 정도에 불과했다. 그동안 영국이나 프랑스의 7월 최고 평균 기온이 25도 안팎이었기 때문에 에어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45도 이상의 기록적인 폭염을 겪으면서 에어컨 구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에어컨 가동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도 사람들이 에어컨을 쓰기 시작하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란 이야기가 환경학자들의 농담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지금도 인도의 미세먼지는 심각한 수준으로 뉴델리인들은 베이징의 공기를 부러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13억 인도인들이 본격적으로 에어컨을 사용한다면 이에 들어가는 전력, 화석연료, 미세먼지 등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