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의 라스트 씬

<빌리 엘리어트> 백조의 비상

by Rosary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 관련 일을 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거의 매일 2편 이상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내 생애 가장 총명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고, 당시 할리우드에서도 수작이 많이 나왔고, 우리나라 영화도 중흥기를 맞이할 때라서 당시 봤던 영화들은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엔 영화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보는 경우가 많아서 영화에 대한 감흥이 살짝 떨어지기도 했었다.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진 채 감상하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고, 만족스러워서 대체 이 영화가 어떻게 막을 내릴까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데 마지막 장면까지 완벽한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록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은 여운이 가득한 경험이 있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 2001>,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 2003>은 영화를 보면서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을 받은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박찬호 감독의 <올드보이. 2003>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벅찬 감동을 느낀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2000>였다. 이 영화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탄광촌에 사는 가난한 11살 소년이 발레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마초적인 아버지와 형이 권한 권투 대신 발레에 빠져드는 빌리를 한없이 응원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는 모습까지 보면 마치 내 꿈이 이뤄진 것처럼 감개무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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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감동적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팬서비스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어른이 된 빌리의 공연을 보러 간 아버지와 형, 그들 앞에 화려한 백조로 나선 빌리의 비상은 이 영화의 대단원을 가장 완벽하게 장식한다. 그런데 어른 빌리가 멋있어도 너무 환상적으로 지나치게 멋있었다. 사실 꼬마 빌리와 싱크로율이 많이 어긋나는 어른 빌리를 보고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뭐 어떤가, 멋있으면 그만이지.

billy elliot last scene - YouTube

2분 남짓한 영상을 지배하는 어른 빌리가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로열 발레단의 아담 쿠퍼(1971년생)라는 무용수였다. 가녀린 여자 무용수 대신 근육질의 남자 무용수들이 주역인 <백조의 호수>를 만든 매튜 본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싶은 아담 쿠퍼는 꼬마 빌리와는 달리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형과 함께 무용을 배웠고 노래와 연기까지 섭렵했다.

1995.jpg <백조의 호수> 에서 아담 쿠퍼

<빌리 엘리어트>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20년이 지났고, 그동안 아담 쿠퍼의 화려한 필모그래피가 넘치는데도 인터뷰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 최고의 무용수가 된 동화 같은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봐도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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