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나요?

자기 인생을 마지막까지 잘 모르고 가면 어쩌죠?

by Rosary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스포 있음*


15년 전 작은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지금은 흥신소에서 다른 사람의 뒤를 캐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년 남자 료타. 조금씩 번 돈은 경륜에 날리고 한참 어린 동료 직원에게 돈을 빌리기 일쑤이고,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비도 제때 주지 못하고, 누나에게 아쉬운 소리나 하면서 손을 벌리고, 노모의 숨겨놓은 비상금을 찾느라 혈안이 된... 말 그대로 한심하고 별 볼일 없는 중년이다. 태풍이 거세게 불어닥친 어느 날 밤, 어린 아들이 아버지 료타에게 묻는다.


“아빠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어?”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16년작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이 대사를 듣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도박으로 날리거나, 아버지의 유품 중에 행여나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전당포를 찾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료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중년을 보내고 있다. 되고 싶은 사람이라… 그런 게 있긴 있었나? 료타는 아들의 돌직구 질문에 “되고 못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라고 애써 대답한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걸까? 요시코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아들 료타에게 “떠나고 난 뒤에 그리워해봤자 소용이 없어. 눈앞에 있을 때 잘해야지. 도대체 언제까지 잃어버린 것을 쫓아가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그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데… 행복이란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란다.”라고 조언한다.

중년이 되어서도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못난 자식이지만 어머니에게 료타는 문학상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존재고, 언젠가는 잘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아들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중년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태풍이 지나가고>의 설정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이입될 것이다. 어린 시절 생각한 것처럼 원하는 모습의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시점을 돌이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료타는 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으며 “아버지는 자기 인생에서 뭘 원했을까?” 궁금해한 것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저 내 아버지, 어머니는 내 인생의 조연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들의 청춘, 그들의 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궁금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죄스럽게 생각된다. 그런데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내 인생에서 뭘 원했는지 모르고 삶을 마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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