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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ug 10. 2023

비만사례자의 무한도전

건강식품 홍보에 이용당하는 '비만'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

20대 후반 처음으로 위내시경을 했었다. 젊은 나이에 위내시경을 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식사 후 잘 체하는 편이었고, 항상 속이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같이 일하던 후배가 나와 비슷한 증세가 있던 지인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겁을 덜컥 집어 먹고 난생처음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는데 빨대 정도 굵기의 관이 들어갈 거라고 예상한 내 생각과 달리 거의 샤워호스 굵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수면 내시경이 없을 때라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내시경을 안하리라 결심까지 했을 정도였다.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억겁의 시간처럼 느꼈던 검사를 마치고 마음 단단히 먹고 의사 소견을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의 진단을 듣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밤에 야식 많이 드시는 편이죠?”


앞뒤 없이 시작된 의사의 팩트폭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환자분 위가 보통사람보다 굉장히 작은 편이에요. 위 크기만큼만 드시면 아주 장수하실 텐데 야식도 많이 하고, 폭식도 좀 하시는 것 같고, 식사를 빨리 하는 편이시죠? 위가 아래로 많이 처졌습니다… 블라블라.” 큰 병이 아닌 건 다행인데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었고 의사가 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론은 위하수증이라는 것, 위 크기만큼 조금만 드시라는 처방을 듣고 진료실을 나서는데 그렇게 무할 수가 없었다.


암튼 그날의 망신으로 나는 식욕과 식탐을 감당할 만큼의 위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또 까맣게 잊고 양껏 먹는 나날이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중년이 되니 정말 식사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일부러 절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지 않으니 못 먹는 것뿐이다. 식욕과 식탐을 소화할 만큼의 위장 크기였다면 10kg이 아니라 20kg 이상 살이 쪘을 것 같아 이젠 작은 위장에 감사한 마음이다.


『과식의 심리학』의 저자 키마 카길 교수는 현대인들의 과식 습관은 개인의 절제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기보다 거대 식품산업의 집요한 노력의 성과라는 입장이다. 무언가 원하고, 사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는 쇼핑충동처럼 음식을 탐하고,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과식충동을 식품기업에서 설계해서 부추긴다는 것이다. 각종 가공식품, 기호식품 등을 건강식품과 자연식품이란 포장을 내세워 별다른 규제 없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기업들의 상술을 비판하고 있다.


공중파나 종편의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건강’을 주제로 한 사례자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비만’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에서 비슷한 내용의 짧은 다큐를 보다가 불편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비만사례자들의 겹치기 출연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협찬받는 건강식품으로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례자가 몇 달 뒤, 혹은 몇 년뒤 감량은커녕 더 비대해진 몸으로 다시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삶이 반복되어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콘셉트이지만 사실은 방송을 위해 그들의 삶을 이용하고 소비하는 사실을 알게 되니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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