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을 바라며…
사춘기 시절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오랜 시간 괴로워하는 나에게 엄마는 현자(賢者)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 삶은 온통 불공평한 것 투성이지만 세상에서 죽음만큼 공평한 건 없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이 말씀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큰 위로를 얻었다. 물론,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려는 과학과 의학의 끝없는 도전을 지켜보면 미래사회에는 정말 150살, 200살도 거뜬히 살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삶을 지속시키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에 대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몇 편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트랜센던스. 2014>였다.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눈앞에 둔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이 반(反) 과학단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그의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켜 그를 살려낸다(그의 뇌를 살려낸다.) 영화처럼 신체가 죽은 이후에도 뇌를 살려내는 연구는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신체가 사멸한 후에 뇌가 살아남는다고 해서 삶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
원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었지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런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삶이 한없이 허무해졌다. 더 이상 아등바등 애쓰면서 살고 싶지 않고,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고 싶어졌다. 최소한 생존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아주 가볍게 살고 싶어졌다. 함께 사는 사람 없이 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끝나게 된다면 홀가분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단순한 삶을 꿈꾸지만 가진 물건들을 최소화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가진 것들을 처분하자니 무슨 미련 때문인지 그게 쉽지 않다.
주방과 욕실은 나름 초간단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책장을 최소화하는 건 영 만만치 않다. 이사할 때마다 골칫거리인 책들을 싹 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매일 브런치 글을 쓸 때 인터넷 검색보다 가진 책들을 참고해서 쓸 때가 많아 책 버리는 것에 미련이 많이 남는다. (세상의 모든 미니멀리스트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다.) *책 처분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노하우 전수 좀…
올해 들어 가장 무서운 악몽을 꾼 탓인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부모님은 무겁지 않은 삶을 사셨고, 자식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너무 많은 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연휴의 끄트머리에 ‘홀가분한 삶’에 꽂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