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라고 좋은 친구일까?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 다닌 절친 S와의 절교 과정

by Rosary

고등학교 3년 내내 죽이 맞아서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 S가 있었다. S는 내 마음과 어찌 그리 잘 통하는지 정말 척하면 착 하는 사이였다. 대학을 진학하고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그래도 한두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났고, 그러다가 가끔 통화는 하지만 얼굴은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가 되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한 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을 보여서 거리감이 느껴졌었다.


1.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이상과 현실에 대한 고민을 S에게 털어놓자 이런 반응이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아무 데나 취직하면 되지.”

이런 반응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그냥 대충 평범한 직장에 다니라는 이웃 사람도 하지 않을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진지한 대화를 한다는 게 무의미한 걸 잘 알기에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2.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S도 만날 겸 영화 보러 가자는 제안을 했고 S도 좋다고 해서 S의 직장 근처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었는데 S는 오지 않았고 거의 1시간이 지난 후 그냥 가려고 하는데 S가 나타났다. 약속하면 어쩔 수 없이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던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영화 보려고 온 거 아니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S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내 팔을 잡고 식당가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와아, 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런 걸까 싶었고 기분이 상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터라 그날은 그냥 별말 없이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3. 그날 이후 섭섭하기는 했지만, S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했고 서서히 마음의 정리를 하고 더 이상 S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S에게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던 S가 왜 전화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면데면하게 전화를 받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 O월 O일에 결혼해.”

“어, 그래. 축하해.”

무미건조한 내 대답에 S는 약간 기분이 상한 눈치였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날 올 거지?”

“아니. 못 갈 것 같은데.”

이 대답에 S는 충격을 받았는지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네가 안 오는 게 말이 되니? 선약 있어?”

“지난번에 통화했을 때 네가 결혼할 때나 되면 연락하겠구나 싶었는데 진짜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결혼식에는 와줬으면 좋겠다.’라고 할 줄 알았지만 예상은 깨끗이 빗나갔다. 사과는커녕 무조건 자기 결혼식에 내가 참석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황당한 반응과 함께...

“네 예상대로 된 거면 문제없는 거 아니야? 너는 꼭 와야지.”

아, 이 친구는 더 이상 답이 없구나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야겠다 싶었다.

“아니. 결혼식엔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게 맞다고 봐. 나는 그럴 마음이 안 드는데 이런 마음으로 결혼식에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S는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 블라블라 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그게 S와의 마지막이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나처럼 오래된 친구와 인연을 칼로 무 자르듯이 잘라버리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단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라고 해서 이기적이고 무례한 친구를 옆에 오래 둘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니 배울 게 있거나,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거나 두 가지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친구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를 만나는 것은 ‘시간과 돈’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것인데 만나서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거나 기분이 상하는 친구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서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존중해 주고, 서로를 믿고 꿈을 응원하는 마음은 있어야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관계라면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없으면 외롭고 쓸쓸하거나, 진정한 친구가 한 명쯤은 꼭 필요하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없이 혼자 지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혼자 설 수 있는 게 우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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