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킹 해보셨나요?

이스라엘 배낭여행에서 만난 귀인(貴人)

by Rosary

오래전 중동지역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이스라엘과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이슬람 국가들을 먼저 여행하고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찍혀있으면 주변의 이슬람 국가 입국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키부츠에서 두 달이나 머물렀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찍히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알아본 바로는 주변 국가 중 이집트와 요르단은 육로로 이동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이스라엘-요르단-이집트 순서로 일정을 잡았다. 이스라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요르단 페트라에 가기 위해 에일랏에서 택시를 예약해서 요르단 국경으로 향했다. 요르단 국경에 도착해서 입국 절차를 밟으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요르단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정치적인 상황이 갑자기 경색되어 며칠 전부터 국경이 폐쇄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코앞이 요르단인데 갈 수가 없다니… 설상가상으로 이집트로 바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국경에서 입국비자 발급이 안되고, 텔아비브 이집트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집트로 이동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텔아비브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요르단으로 가는 계획이었으니 다시 텔아비브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한 데다가 타고 온 택시는 이미 떠나버렸고, 국경에는 버스도, 택시도 없었다. 대체 뭘 타고 국경에서 에일랏으로 돌아가며 다시 텔아비브로 돌아간단 말인가. 마음은 급하고, 도무지 방법은 생각나지 않고, 늦은 오후라 곧 해가 질 텐데 어떻게 가야 하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히치 하이킹!


영화에서나 보던 히치 하이킹을,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니고 이스라엘에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에일랏 가는 차는 있겠지 싶어 주변 차량을 돌아다니면서 일단 에일랏 방향을 물었으나, 희한하게도 다들 다른 방향이었다. 목재를 실은 파란색 미니 트럭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다소 터프해 보이는 운전사에게 혹시 에일랏 가냐고 물어봤더니, 세상에 텔아비브를 간다는 것이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비용은 드릴 테니 혹시 태워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선선하게 타라는 대답이 나왔다.


트럭에 올라타서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운전사의 인상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우락부락해 보이긴 해도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능글능글하게 말을 많이 시켰으면 금세 후회가 밀려왔을 텐데 말이 없고, 무뚝뚝한 태도가 오히려 믿음이 갔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사방이 어두워지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 이상한 수작 부리면 어떻게 하지, 가방 속에 무기로 쓸만한 게 뭐가 있으려나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불빛 하나 없는 낯선 도로에 오직 상대방의 선량함만을 믿고 대략 4시간쯤 달렸을까. 슬슬 번화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고, 표지판에 Tel Aviv가 보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잠시 후 다 왔다는 운전사의 말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건네려 하자 그는 극구 사양하면서 자기도 내 덕에 지루함을 덜었다면서 좋은 여행 하라고 덕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와아, 이렇게 좋은 분을 두고 혼자서 의심하고 별별 생각을 다 했던 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서운 세상 탓을 하기도 했다. 멀어지는 파란 트럭을 바라보며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마음속에 훈풍이 불어온 듯했다. 이후에도 내 생애 모든 운을 여행할 때 끌어온 듯 어려울 때마다 선의로 도와주는 귀인(貴人)들을 여럿 만났다. 혼자 여행을 나섰다가 험한 일을 겪는 일도 종종 보는데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운이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여행할 때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것이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건 항상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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