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갈 수 없어 더욱 그리운 그곳
최근 몇 년 사이 심해진 독서 강박 증세가 연말을 맞이하여 휴식기가 왔다. 1주일에 1권씩 책을 꼭 읽는 편인데 11월 30일이 마지막 독서였다. 하필이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전부 400~5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인데 12월 들어 영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독서 강박 증세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찾은 자구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멘털이 무너지거나 가라앉을 때 잠시나마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한 것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피처가 되어준 건 로렌스 더럴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였다.
비극적이지만 언제나 흥미로운 시기였던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소설 형태로 쓴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줄리안 반스의 『메트로 랜드』였다. 『메트로 랜드』의 내용은 남아있는 게 없는데 읽음직한 재미있는 작품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메모해둔 것 중 가장 마음을 끌어당긴 것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였다.
『저스틴』, 『마운트 올리브』, 『발타자르』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클레어』는 소장하고 싶어 구입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로렌스 더럴이 머물렀던 알렉산드리아의 아름다운 해변과 도시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고, 인물들의 애처로운 사연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2005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가본 경험이 있어서다.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알렉산드리아에 갈 계획이 없었지만, 이집트 다합에서 만나 여행을 같이 다닌 친구가 알렉산드리아에 꼭 가보고 싶었다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갔었기에 알렉산드리아에 머문 이틀 동안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세계의 문자들로 벽면을 장식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한글을 발견한 즐거움, 1929년에 문을 연 카페의 역사가 느껴지는 로스팅 기계와 유난히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의 맛… 이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는데 소설 속 알렉산드리아는 참 고풍스럽고 멋진 도시였던 거다.
어쩌면 로렌스 더럴도 그 유서 깊은 카페 한 구석에서 커피를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상상만으로도 짜릿한데 그의 자취를 따라 알렉산드리아 여행을 했으면 순간순간이 얼마나 특별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이렇게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를 가봤음에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내 생애 이집트를 다시 갈 일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의 여운을 만끽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