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츠에서 만난 스무 살 친구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세상에 쓸모가 있을까?

by Rosary

오래전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8주 정도 생활한 적이 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프랑스 친구가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낭여행 중인 어린 친구였다. 나이보다 성숙하고 생각이 깊고 따뜻한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다. 평범한 인물화나 풍경화보다 복잡한 내면을 표현해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그림이 너무 멋지다고 칭찬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고마워, 그런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어.”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잘 그리잖아. 그럼 계속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아?”라고 되물었더니 뜻밖에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잘 알아.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잘 그렸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게 세상에 큰 쓸모가 있을까? 사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은데 거기에서 봉사하려면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의대를 진학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게 고민이라 여행하면서 생각 중이야.”


그 대답을 듣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다시 확인을 하고 기분이 복잡했다. 나는 서른 줄에 접어들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고작 스무 살 남짓의 친구는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정확하게 알지만 그게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생각까지 하는데 그때까지 나는 그저 내 적성에 맞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 뿐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자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성과 진로가 관심사였을 뿐,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의 역할을 고민했다는 이야기는 그때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키부츠에는 그 친구 또래의 유러피안이 여러 명 있었지만 대체로 철부지들이었고, 춤추고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가 또래보다 조숙하고 배려심이 넘치기도 했지만 어린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을까. 거친 세상에서 제 앞가림하면서 살아야 하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길 바라는 게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이겠지만 자녀의 성공 이후 그 성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점점 더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 같아 젊은 세대에게 늘 미안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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