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일 패스 3개월권 139만 2천 원이던 시절의 유럽배낭여행
책상 정리를 하다가 오래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사용했던 유레일 패스를 발견했다. 나달 나달 해진 상태만 봐도 3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알토란같이 본전을 뽑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도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지금처럼 카메라 해상도가 높지도 않은 데다가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해서 낮은 화소로 저장해서 남아있는 사진들이 흐릿하고 영 시원치 않은 게 아쉽기만 하다.
꽤 오랜 여행 기간 동안 유럽을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 유레일 패스 3개월권을 구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8년 동안 긴 휴가를 쓰지 못한 관계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일에 매진하고 살았는데 다니던 직장에서 사업부를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장기 배낭여행을 실천해야겠다 싶어 퇴직과 함께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사에서 항공권과 유레일 패스를 구입할 때 얼마나 설렜는지…
당시 여행을 준비하면서 메모해 뒀던 3개월 유레일 패스 가격을 찾아보니 139만 2천 원(2004년 11월 5일 기준 Euro 환율 1,450원)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찾아보니 124만 9천 원(2023년 3월 29일 기준 Euro 환율 1,410원)… 뭐지? 다른 물가에 비해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이 아닌가. 가격 확인을 하고 나니 방랑벽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지금처럼 사전 예약이 필수적인 시대가 아니어서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갈 수 있었던 자유로웠던 그때의 여행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55리터 배낭을 짊어지고 지도에 의지해서 목적지를 찾아다녔기 때문에 낯선 길을 찾아 헤매느라 엄청난 거리를 걷고 또 걸었던 여행이었다. 길게는 1주일, 짧게는 1~2일에 한번 꼴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한 번도 아프지 않고 매일매일 설레면서 기차에 몸을 실었던 그때의 체력과 열정은 돌이켜보니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중년의 여행자뿐만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여행자도 종종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싶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은 가슴이 뛸 때 가는 거지, 다리가 후들거릴 때는 가는 것이 아니라던 지인의 조언을 듣고 깔깔거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객기가 여전한 걸 보면 아직 세상 구경에 대한 열정은 활활 불타는 듯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브런치에 여행일기를 올릴 수 있는 그날까지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도록 체력만 기르면 될 일이다. 2020년대의 유레일 여행은 2000년대와 얼마나 다른 여행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