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로맨스에 빠져드는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

by Rosary

영화 <비포 선라이즈. 1996>를 보고 배낭여행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낭만이 생긴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제시와 셀린느의 청춘과 열정이 빛나는 순간을 보면서 배낭여행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은근히 기대했던 순간이 있었다. <김종욱 찾기. 2010>는 또 어떤가. 여행지에서 공유 같은 남자, 임수정 같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면 어찌 연애에 빠져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여행에서는 이런 로맨틱한 순간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내 첫 배낭여행은 30대 초반 3개월 동안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3개월 동안 유럽을 돌아본 나름 꽤 긴 일정이었다. 나는 이성교제에 관해서는 조심성이 과한 편이라 배낭여행을 떠나면서도 여행지에서 연애를 할 거라는 기대감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기간이 반년 정도 되니 잠깐잠깐 로맨틱한 순간이 있긴 있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 외국이라는 공간이 주는 낭만적 분위기, 혼자 여행하면서 느끼는 외로움, 누군가와 이 멋진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들뜬 마음 등은 청춘남녀의 연애세포를 무럭무럭 키울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될 만하다.

2010.jpg 영화 <김종욱 찾기>

하지만 분위기에 취한 연애감정은 진짜가 아니라는 정신무장(?)을 단단히 해서인지 반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정신적 울타리를 튼튼히 쳐놓기도 했었지만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도 비교적 젠틀하고 매너 있는 사람들이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싶은 대책 없는 일탈을 경험하는 여행객들을 보면서 걱정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90년대 청춘들에게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을 한껏 불어넣으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한비야 씨의 “바람의 딸” 시리즈는 지금 보면 위험천만한 무용담을 자랑하듯 나열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배낭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 상당히 부풀려진 허풍이지 않을까 싶은 내용들도 다수 등장한다. 특히 중동에서 무슬림과 로맨스에 빠지는 대목은 정말이지 해도 너무 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책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과장은 이해할 만 하지만 반군 지도자라니…


여성 칼럼니스트들이 배낭여행에 로맨틱한 장치를 즐겨 끼어넣는 듯한데 사실 나 홀로 여성 여행자들에게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장기배낭여행을 해본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돌발상황이 동반하는 게 배낭여행인 만큼 매사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다 보면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제법 발생한다.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여행에서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친구 중 한명도 그렇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사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 사람과의 인연을 다시 생각하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위에 언급한 내용은 일시적인 기분으로 저지르는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일탈의 유혹이 있을 때, 항상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 대답이 “No” 라면 고민할 필요 없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용기와 만용은 다르다. 여행에서 로맨스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픽션과 논픽션은 구분할 줄 알아야 뒤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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