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성취를 잿더미로 만드는 전쟁 <지옥의 묵시록>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 제목을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원제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원제의 뉘앙스를 살리면서도 직관적으로 와닿는 잘 지은 한국 제목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수 있기에 수입사는 제목 짓기에 고심을 했을 것이다. 의역으로 말맛을 살려서 굉장히 잘 지은 제목이 있는가 하면, 오직 흥행만을 생각해서 자극적이고 엉뚱한 제목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7>, <Ghost 사랑과 영혼. 1990>, <The Shawshank Redemption 쇼생크 탈출. 1995> 등은 작명 센스를 발휘한 제목으로 꼽을 만하다.
<Apocalypse Now 지옥의 묵시록. 1979> 역시 감탄이 나올만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파멸, 종말을 뜻하는 Apocalypse를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비장한 작명으로 완성한 것은 원래 일본 개봉 시 나온 걸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마음대로 추측해 본다.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은 조지프 콘래드(1857~1924)의 소설 『어둠의 심연 Heart of Darkness. 1899』으로 19세기 콩고 정글의 토착민들을 길들이려는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하면서 누가 문명인이고 누가 야만인인지를 묻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소설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 <지옥의 묵시록>이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폭력과 파괴가 거침없이 이뤄지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인상적인 대사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지를 묻고 있다.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 분)은 윌라드 대위(마틴 쉰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군인도 살인마도 아니야. 자네는 그저 심부름꾼이야.” "자네는 날 죽일 권리는 있어. 그러나 나를 심판할 권리는 없어.”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분)은 “난 아침에 맡는 네이팜 냄새가 좋아. 한 번은 우리가 12시간 동안 계속 어떤 능선을 폭격했거든. 폭격이 끝나고 나서 거기 올라가 봤지. 가보니 아무것도, 썩는 시체 하나조차 없더군. 온 능선에서의 그 냄새, 휘발유 냄새 말이야, 그 냄새는… 승리의 향기지.”라고 말하는 모습은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전쟁광의 광기가 느껴져 소름이 돋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거의 2년이 되어가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와중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여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만 커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벌이고 있는 전쟁인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