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다정했던 국민배우와의 이별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커뮤니티에서 이제는 식상해진 ‘국민 OO’ 닉네임을 제일 먼저 쓰기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논쟁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도 ‘국민 OO’ 붙일만한 연예인들이 있긴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1996년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후 국내 언론에서 안성기에게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국민가수’, ‘국민타자’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국민여동생’, ‘국민엄마’라는 호칭이 이어지고 요즘엔 그냥 아무 데나 갖다 붙여서 ‘국민 OO’가 더 이상 찬사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새해 첫 월요일에 국민배우 안성기의 별세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1951년 1월 5일 태어난 그는 2026년 1월 5일 세상을 떠났으니 백세시대인 요즘 기대수명에는 미치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KBS 추석 특집으로 3시간 동안 30여 곡을 열창하며 건재를 과시했던 조용필과 경동중학교 동문이라는 걸 감안하면 안성기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듯해서 아쉽고 슬프다.
영화제작자 안화영의 아들로 태어난 안성기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의 아역으로 데뷔한 후 연기 활동을 이어갔고 중학교 3학년 때 지난해 연말 세상을 떠난 이순재와 함께 연극무대에도 올랐다고 알려졌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스크린에 복귀한 그는 이후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남자배우가 되었다. <안개 마을. 1983>, <깊고 푸른 밤. 1985> 등으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하였고, <만다라. 1981>, <고래사냥. 1984>,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 <칠수와 만수. 1988>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90년대 들어서 <투 캅스. 1993>, <태백산맥. 1994>,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고, 2000년대 <무사. 2001>, <실미도. 2003>, <라디오 스타. 2006>, <부러진 화살. 2012> 등 조연과 주연을 넘나들며 배우들 뿐 아니라 제작자와 스태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화계의 어른이 되었다. 2000년대를 영화 관련 일을 했기에 현장에나 시사회에서 안성기 씨를 여러 차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언제나 조용하고 다정한 모습이어서 ‘저분이 그렇게 오랫동안 활동한 연예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성기의 출연작이 너무 많아서 대표작을 꼽기도 어렵지만 그의 중요한 대표작은 동서식품의 맥심 브랜드 광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극장을 찾아야 볼 수 있었던 '영화배우'와 달리 TV만 켜면 볼 수 있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가 대중에게는 친숙한 얼굴이었다. TV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영화에만 출연했던 안성기와 대중과의 거리를 가깝게 한 건 무려 38년(1983~2021) 동안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등장한 모습 때문이었다. 커피 향을 맡고 마시는 15초가 대중에게 각인된 안성기의 모습이었다. 당시만 해도 마초적인 남성성을 내세운 배우들이 각광받던 시대에 부드럽고 지적인 매력은 시나브로 대중에게 스며들었다.
2019년 혈액암 투병 소식과 함께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걱정이 들어 마음속으로 응원했지만 쇠약해진 그의 몸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메인 이미지. 1997년 동서식품 맥심 지면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