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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by 금쪽이선생

사과에는 요건이 있다.
진짜 사과라면,
첫째, 내가 잘못했음을 분명히 인정해야 하고
둘째, 그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이해해야 하며
셋째, 변명 없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넷째,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이 글은,
그 모든 조건을 갖춘,
늦었지만 진심 어린 사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초등학교 친구 조OO.
네가 매일 아침 나를 데리러 왔던 기억,
그땐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어.
나는 왜 항상 너를 기다리게 했고,
심지어 오지 않으면 화를 냈지.
너는 그 시간에 뭘 포기했을까.
그 짧은 등굣길이 네겐 얼마나 무거웠을까.
나는 나의 편의를 위해 너를 이용했고,
그게 괜찮다고 착각했다.
정말 미안하다.


초등학교 친구 윤OO.
넌 툭툭 건들고 시비 걸어서 미안해.

나는 그게 나쁜 일인지 몰랐다.
감정이 앞서면 주먹이 먼저 나갔고,
넌 그냥 웃거나 큰 반응 없이 참았지.
그땐 네가 착해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침묵이 너의 상처였을지도 몰라.
내가 너를 아프게 했고, 그건 명백한 폭력이었어.
정말 미안해.


여학생 고OO.
나는 너를 울렸어.
아이스깨끼 놀이라고 우겼지만,
너의 눈물은 단순한 장난으로 생긴 게 아니었어.
나는 멋쩍게 웃었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지.
그 일이 네 안에 오래 남아 있진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기억해.
그리고, 너무 늦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


사촌 형.
형이 아끼던 워크맨,
내 가방 속에 몰래 넣었던 날이 있어.
그땐 그냥 잠깐 써보고 돌려주려 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결국 돌려주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용했어.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은 달라졌던 것 같아.
그건 형이 나를 믿었던 만큼, 내가 실망시킨 거겠지.
진심으로 미안해.


슈퍼 아주머니.
초등학생이던 나는 과자 하나를 훔쳤어요.
그때 천 원이 없어서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젠 그게 그냥 내 도둑질이었다는 걸 알아요.
아주머니는 아마 그 사실을 알았을 수도,
모른 척 넘기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죄책감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초등학교 친구들

우리 위층에 살던 동생

중학교 친구들

내가 웃으며 놀렸던 친구들,
더러운 짓으로 장난친 아이들,
지금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지만
너희 얼굴은 생생히 떠올라.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그땐 그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
너희의 자존감을 건드렸고,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을 훼손했어.
그 잘못, 잊지 않고 살아갈게.




나는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도
‘그땐 어렸으니까’라는 말로 도망쳐 왔다.

하지만 이제 도망치지 않겠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름이 적혀 있는 너희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더라도,
이 한 문장만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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