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호의 선물
나나호는 일본인인데 유엔에서 일을 해서 세계 여기저기를 로테이션 돌며 일을 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편견을 기분 좋게 깨트려 준 친구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몇 년을 보냈고, 다음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휴가동안 이 요가 코스를 듣고 싶어 발리를 선택했다는 사실. 일정이 빠듯한 그녀는 나를 포함한 여느 200시간 트레이니와 달리 100시간 코스를 택했다는 것. 그 말은 즉슨, 그녀는 우리들 보다 한 주 먼저 떠날 거라는 복선이었다. 하필이면 왜 그 사람이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이 여인이어야 했을까.
나나호가 머무는 이 주 동안 나와 그녀는 나란히 배정받은 방을 쓰게 될 거였다. 이곳 요가 스쿨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가 나였고, 그를 이어 도착한 여인이 바로 나나호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를 처음 봤을 때에는 작은 체구에 중성적인 커트 머리와 차림새, 동그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는 긴 속눈썹에 왠지 모를 톰보이 같은 결의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며칠 만에 그 예쁜 눈보다 더한 고운 사교성과 외교술을 보며 난 자주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아우르며 다가갈 줄 아는, 애쓰지 않는 기분 좋은 공기 같은 사람이 그녀였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어느 그룹에서건 난 혼자가 되는 것을 마다치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룹에서는 혼자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면 한쪽 테이블에 홀로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물었다. 글이 피어나는 프로세스가 궁금하다며, 그녀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무라카미를 좋아한다는 나의 한마디가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쉬는 시간 우리는 수영장이 있는 잔디밭에 내려가 발을 담그며 대화를 이어갔다. 글을 쓰는 이야기 외에도, 그녀가 몸 담고 있는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곧 그린카드 비자 관련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고,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결혼을 하면 성을 남편의 것으로 바꾸어야 해서 그녀와 남편은 일본에서 이혼 절차를 밟은 뒤 미국에서 다시 혼인 신고를 치렀다는 사실, 늘 요가와 가깝게 지내왔지만 그 교리와 철학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열었다.
늘 일찍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향하던 나는 그날 저녁 식탁에 웬일로 가장 오래까지 버티며 수련생들과 굿나잇 인사를 나눴다. 각국의 정치나 제도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오가는 대화들을 진중하게 들어내고, 가끔 스나가 다정하게 물어주는 질문에 답을 하곤 했다.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역사와 관계도 나나호였기에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해 낼 수 있었다. 훨씬 나 자신에 대해 기분이 좋아졌다. 그룹 생활에서 겉도는 인물이 되는 건 나 역시도 불편한 일이었던 거다. 내일 다시 혼자가 될지언정 오늘 하루, 나나호가 준 선물 같은 하루를 가득히 즐겨내기로 난 작정을 했던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