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한 스푼
피곤해서 지난밤 저녁 명상을 스킵하고 잠들었더니 허우적거리는 아침이다. 무거운 몸으로 아쉬탕가 수업을 마치고 나니, "내가 이걸 어떻게 해낸 거지?"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오늘은 토요일. 입소 후 주말까지 내리 요가만 하고 보니, 그제야 이 트레이닝 과정이 힘든 거구나 깨닫게 된다. 사실 크게 생각이 개입될 겨를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진 발리행 여정이라, 힘들까 의심할 틈이 없었다.
오늘부터는 미래를 지어야지 다짐해 본다. 지난밤 이탈리아 사디니아에 한 호스트로부터 자기 집에 머물며 일손을 보태어도 좋다는 제안을 받았다. 원했던 가드닝 페이 잡은 경험 있는 브라질리언 여인에게 주게 됐지만, 내가 열성을 다해 어필하고자 보냈던 인스타 그램 계정이며 유튜브 채널을 그녀는 좋게 본 모양이었다.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른다. 깊숙이서 희망이 퐁퐁 솟는 느낌.
여느 아침 시간처럼 홀로 밥을 먹으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니, 첫날부터 체크인을 도와줬던 카덱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기 인스타 그램을 보여주면서, 얼마 전 다녀간 트레이니고 이제는 친구라고 말하며 한 한국인 여성과 그녀의 가족들이 함께 담긴 사진들을 자랑했다. 그리고는 나 역시도 원한다면 야시장에 데려가 줄 수 있다고, 힘들면 언제든 말하라고 덧붙였다. "다음 주나 한번 나가볼까?" 하는 나 역시 믿기 힘든 뜬구름 같은 말을 건네고 난 그 자리를 모면했다. 마음먹고 수련 중인데 곤란한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 수업이 시작되니, 그녀의 그 제안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거다. 즉흥 한 스푼을 더하면 삶은 더 재미있어지는 법이다. 난 곧바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고, 그날 밤 달리는 스쿠터 위에서 처음으로 살아 숨쉬는 발리의 밤을 느꼈다.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불빛과 피부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 앞뒤와 양 옆을 나란히 서서 함께하는 스쿠터 동지들. 그 어떤 영화 속 장면도 이만큼 아름답진 못할 거라고 난 속으로 읊었다. 한주 내내 저염 비건식만 먹다가 처음으로 맛본 발리의 볶음밥에 감탄해야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새끼손가락 반 만한 인도네시아 고추를 한 입 가득 깨물고는 머리까지 새빨개져 엉엉 소리 죽여 울기도 했다. 전통 시장을 돕겠다고 산 아로마 테라피라고 적힌 인센스 스틱은 실은 한국에서 가져온 인도산보다 훨씬 향이 깊고 순해 좋았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배움이고, 곧 요가다. 수련 일주일 만에 만난 자유로운 두 시간의 일탈은 나의 숨통을 열어젖히며 커다란 전율과 함께 무언의 깨우침을 주었다. 드디어 발리의 요가 여정이 더 재미있어질 거라는 경적을 오늘 밤 난 들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