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워진 첫 단추
“아니요, 그 위치가 아니에요. 다들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곤 왓츠앱 단체 방에 구글 지도가 하나 도착했다. 난 요가원에 가장 일찍 입소한 이었다. 그래서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도 누구보다도 먼저 몸소 체험해야 했다. 지도 속 떠있는 그곳은 도무지 어디인지, 이름조차 내가 등록했던 학교의 것과는 달랐다. 사전 등록한 학생들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양해의 말 하나 없이 수련 장소를 바꿔놓고, 하루 전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제야 이를 통보한다는 그들의 심보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발리의 그 많은 요가 학교들 중에 하필 이곳을 택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닷가와 가까운 거리였다. 근처에 바다만 있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건 간에 언제든 뛰어나가 소리치고 다시 묵묵히 돌아와 수련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수련생들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도착한 요가원은 물음표가 뜰만큼 어딘지 모르게 외진 곳 한가운데에 있었고, 해변 같은 건 찾을 수 없는 부지 안에 조그마한 수영장이 달랑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름을 지어 주자면 yoga in nowhere이라 써 붙여야 할 것 같은. 시원한 파도 소리가 나는 바다를 기대하고 도착한 나에게 그들은 달랑 꽃과 풀들 그리고 벌레가 무성한 들판을 주었다. 이제 와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무작정 과정을 취소하고 여행을 하기에도, 어떤 것도 참 아쉬운 상황인거다. 아마 그들은 우리들의 이런 처지를 알았는지 모른다. 이런 무책임한 통보 방식을 쓰는 곳에 내가 들어와 있다니, 시작도 전에 이미 이들이 미웠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착해 이를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직원이 한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요가원의 운영 스텝들은 영어로 소통이 불가능했고 그나마 영어를 쓰던 한 분은 새로 온 직원인 듯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요가원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마음을 조금 안정시켜 본다. 나에게 주어진 건 발리에서의 한 달. 중요한 건 요가 수련이었고 지도자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는 거였다. 생각이 그곳에 닿자, 그만 배신감과 불신에 시끄럽게 울리던 스위치를 끄기로 했다. 짐을 풀고, 비행하느라 지친 몸을 씻고 풀었다.
오후 다섯 시, 새로운 기수들의 수련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세리머니가 시작됐다. 마을의 high priest 라 불리는 구루께서 오셔서 만트라를 외고,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고, 불을 지피며 세리머니를 진행해 주셨다. 타오르는 불 속에 각자 삶에서 치유하고픈 문젯거리들, 덜어내고 싶은 것들을 적어 던져 넣은 종이 조각들이 타들어가 재가 되는걸 지켜봤다. 어르신께서는 앉아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로 꽃을 뿌려 주셨다. 새하얀 옷을 입은 우리들은 노래를 부르고 일어나 춤을 추며 원을 그리고 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는 리인카네이션(reincarnation) 의식이라고 이를 불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려 왔는지. 비로소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