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바로 대망의 그날, 나의 수업 시연이 있는 날이다. 그냥 단순한 첫 시연으로 생각하면 괜찮을 것을, 나는 마치 지도자로의 첫 데뷔무대를 앞둔 이처럼 지난밤부터 깊숙이 타이타닉 하나라도 깔려있는 바다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 일곱 시 수업을 세 번째 타자인 한국인 동생이 활짝 열었다. 아침부터 화장실을 다녀와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복통에 불안했는데, 그녀가 준비한 아사나들이 하필 코어 중심이라 난 중간에 항복하고 방으로 돌아와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괜히 어정쩡하게 버티고 있는 게 되려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정말이지 신기한 것은, 그녀가 아침 수업을 그런 식으로 많이 빠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옆자리에서 아사나를 하다가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곤 했다. 나중에 물어보면 '잠을 못 자서', '몸이 안 좋아서' 하는 소리를 하곤 했던 것이다. 어느새 나의 무의식 중에는 '그녀의 수업에서는 그래도 된다'라는 생각이 심겨 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티를 두세 잔 우려 마시고, 복잡한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이어지는 나의 시강까지 한두 시간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을 더 연습해 설 수 있는데, 나는 굳이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짜인 스토리 라인은 좋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난 무대 위 시간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 즉흥성이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모든 걸 펼쳐지는 대로 맡겨보고 싶었다. 혹은, 쇼 바로 직전 젖은 스펀지처럼 느껴지는 긴장감을 열심히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된 건지, 어릴 적부터 내게는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주어졌었다.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 라던지, 계주 선수 라던지, 학교 대표로 혹은 도시 대표로 영어 말하기 대회나 합창 대회를 출전하거나, 학교 축제나 음악회의 사회를 맡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들은 해내고 나면 짜릿하고 또 개운했다. 설렘으로 이벤트를 준비하는 그 시간들도 때론 재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실전은 단 한번뿐이라는 그 특유의 긴장감이,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단 하루를 위해 쏟은 몇 달의 시간이 참 허망하게만 느껴지곤 했다. 마치 고등학교 몇 년의 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단 하루의 수능처럼 말이다.
수능을 거친 후에는 난 혀를 내두르며 결코 나서는 일이 없어졌다. 더는 이벤트성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늘 웃으며 예쁘게 보여야 하는, '보이는 일'에도 질려버렸다. 대학 졸업 후에 영어 강사 일을 시작하는 데에도, 영어 전공자가 아닌 이들조차 잘만 시작하는 그 일을 난 영문과 졸업생임에도 불구하고 테솔 자격증까지 따고 나서야 겨우 강단에 설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유를 좇아 첨벙 뛰어드는 도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인데, 그렇게 시작된 해외 생활, 타지 생활은 되려 나를 더 내 안에 가두었다. 한국인이라면 가질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생소했던 해외 문화에 난 더 목을 틀어 잠가 소라게가 되어 버린 건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간단한 수업 소개와 함께 첫 수업이니 실수를 해도 잘 봐달라는 당부 인사를 건네고 나디 쇼다나 호흡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호흡법을 소개하는 내 손가락이 폭풍 치는 파도처럼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도저히 덜덜 거리는 손가락을 공중에 띄워 둘 수 없어 광대와 볼을 지지대 삼아 얹어야 할 정도였다. 그것이 호흡 구간이었단 사실이 다행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난 커다란 떨림이 서서히 작아지고, 다시 눈을 떠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본의 아니게 호흡 시간을 아주 넉넉히 써야했다. 그렇게 사정없이 떨고, 다시 나를 만나 붙잡고, 아사나를 통해 배에 힘이 생기고 나를 밀어가다 보니 어느새 사바사나에 닿아 있었다. 역시나 난 수련 내내 목소리를 참 쓰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들 앞에 서서 티칭을 해내야 하고, 그러려면 이들과 원만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편하게 대면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두어야 했으리라. 또 수업 시간 챈팅을 따라 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소리 내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두었어야 했다. 돌아온 지도자 분의 피드백 역시 내가 소리 내는 걸 봐서 좋았다고, 요가 강사로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머지 프레젠테이션 테스트는 간단했다. '요가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내가 선택한 주제는 '차크라'였다. 사실 공부한 내용을 프레젠테이션한다기보다는 (그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퀴즈 타임을 준비해 다 같이 배운 것을 기억하고 즐겨보자 했던 것이 나의 의도였다. 이들과는 다른 방식을 준비한 내게 지도자 분께서는 좋은 카운슬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가진 건 유니크함이니 그걸 잘 쓰며 살아가라는 덕담을 덧붙여 주셨다.
모든 것이 무사히 끝이 난 마지막 날 밤은 자매 요가 센터 수련생들과 스태프들이 모여 발리 댄스 공연 관람이 준비돼 있다고 했다. 덕분에 인요가를 일찍 마쳤지만 난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도 한결같이, 마지막 밤은 조금 더 나와 함께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픽업 온 차량을 타고 수련생들이 빠져나갈 즈음 난 그랩 바이크를 불러 주변 카페로 향했다. 혼자임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요가원 밖에서 홀로 조용히, 아주 오랜만에 먹는 음식 같은 음식이 내겐 호화로운 파티 같다. 내일이면 공식적으로 이 여정이 끝이 나는 거다. 그렇게도 궁금했던 버킷 리스트 속 지도자 수련 과정이란 게 이런 맛인 거였다.
에필로그에서 계속.
with love,
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