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스럽고 애통하다.
나이를 점차 먹어 제법 어른이 된 것마냥 행동했지만, 좀처럼 그저 당당할 수가 없다. 나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만 친절하며 나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한다. 나는 고작 그 정도 그릇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이치이며 내면이 건강하기 위한 방법인 것처럼 그간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은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이 자아의 탁월함으로 나아가지 않고 안주하고자 하는 내면의 지독한 게으름이라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아니라며 나를 위로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나의 사무치는 한이 되는 까닭은, 앞서 말한 기준이 되는 친절과 사랑의 정의는 오로지 내 주관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만족해야 비로소 사랑으로 인정한다. 아, 얼마나 오만한가
나의 친절과 사랑이 대단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줄 사람과 주지 않을 사람을 구분한다. 내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기준과 선에 부합하지 않으면 이것은 네가 가질 수 없는, 네게 베풀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깊고도 독한 무지를 스스로 뽐내는 꼴이다.
이제껏 받아온 사랑의 대다수가 그러했을지 모르나, 나를 살려온 마음들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간 가치를 두고 숭고하게 여기며 따르고자 하는 길의 사랑은 고작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제부터 나는 타인을 사랑하는 실력의 성장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일까.
대단한 사랑을 동경하는체하였지만 결국은 껍데기만 평생 모방하고 있던 것이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만을 보며 사랑은 원래 어두운 것이라 합리화하였다. 경계를 허물지 않는 사랑에 오래도록 머물며 너는 왜 사랑을 품지 못하는가 안타까워하였고 나는 왜 더 뻗치지 못하는가 슬퍼하였지만, 이 모든 것 결국 거울만 보며 안타까워하는 꼴이었다. 당장 옆으로 손 뻗어 건지지 않고서 거울만 향해 손 내미는 우스운 모습이었다.
초라하다. 우러러본 하늘이 밝은 탓에 그 빛이 비추이는 이 땅 자체가 푸르르게 빛나는 줄 착각하였다. 삶의 역경 끝들을 겨우 지났기에, 그 당시 ‘지금 이만큼’ 사랑하는 스스로가 정말 대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이 순간의 지금까지도, 나는 성장하지 않고서 영원히 그때의 ‘지금’인 줄 알며 이 정도의 사랑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무엇이 대단한가. 무엇이 바른가. 크고 원대한 사랑을 바라보기만 하는 삶인가, 작디 작은 오늘의 사랑을 행하는 것인가.
사랑함은 본디 아픔과 비난 그리고 인내, 무엇보다 지혜의 정수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자만함만이 더욱 가득하다.
사랑함은 욕심을 덜어내는 것임에도 나의 이 사랑에는 적당한 편리함과 편안함, 바라보는 시선과 보답을 원하는 추악한 욕심만 어느새 자리 잡고 있다.
허영만 가득한 사랑은 오히려 껍질일 뿐이며 실상은 죄악이다. 그 알맹이는 결국 욕심이 단단하게 굳은 이기심일 뿐이다.
내가 가진 사랑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연 무엇이 양분되어 싹 틔우게 하며 과실의 모양은 어떠한가.
사람을 볼 때에 말보다 행실이 어떠한가 보아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일의 결과가 어떠한가 관찰하여야 하며 결국 그 중심이 무엇인가 보아야 한다.
사랑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 사랑은, 네 사랑은 결국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 원하는 결과의 주체는 누구인가. 자신인가 타인인가.
그 누구도 스스로의 사랑의 완전함을 주장할 수 없다지만 그 흠결을 인정하는 이는 또한 몇이나 되는가.
어제보다 하루 더 지난 나의 마음은 과연 영글어가는가.
하루만큼 더 좀 먹히는 이 행위를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게 내면이 썩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