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라대왕님, 포대왕님, 루미상지님, 어제보다 나은 오늘님
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저는 3살쯤이었습니다. 전혀 기억에 없죠. 광주에 대해 처음 접했던 건 대학교 때였고, 스스로 뭐라도 찾아보기 시작한 건 그보다도 한참 뒤였습니다. 그리고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계엄을 맞았습니다.
김여사님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쓰러져서 자던 날. 계엄이 선포되었다가 새벽에 해제되었습니다. 다음날 병원 가는 길에 뉴스들을 급하게 찾아보는데 겁이 덜컥 났습니다. 사자성어 첫 연재 세고익위부터 윤석열과 천공이 나오잖아요.
그 주 금요일, 오전에는 건강검진이 있고 오후에는 애 치과를 데려가야 해서 김여사님 면회를 못 갔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조금 났길래, 친구와 둘이 광화문으로 나갔습니다. 솔직히 겁도 좀 나고 쓸데없이 비장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광화문에 도착해서야 시위가 없다는 걸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남자 둘이 교보문고 가서 책 보고 스벅에서 커피도 마시고 왔지요. 다음 날, 광화문에서 하는 집회는탄핵반대 시위라고해서 퉤퉤퉤 침도 세번 뱉었습니다.
그날 이후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는데, 정말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특히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대국민 담화가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이 담화가 진짜 신기한 게, 사람마다 열받는 포인트가 다 다르더라구요. (저는 중국산 태양광 발전기가 삼림을 불태운다는 이야기에서 폭발했습니다. 그 정도 기술력이 있으면 벌써 지구 정복하고 남았지..)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끈다고?
지금 제가 처해있는 상황은, 여의도에 나갈 상황이 아닙니다만. 온몸이 다 아프신 마나님을 꼬드겨서 결국 나갔습니다. 표결이 어떻게 갈리겠냐를 두고 생전 안 하던 내기도 하구요. 무엄하게도 치느님을 두고 저는 203표, 마나님은 220표에 걸었지요.
그런데. 이게 나갈 때는 참 호기로웠습니다만. 날이 정말 오지게 춥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서서 달달 떨다가 커피라도 한 잔 있어야 되겠다 싶어 스벅에 들렸는데, 자리가! 갑자기! 빈자리가! 두둥. 마음은 커피만 받아서 나가야지 했는데, 몸은 이미 앉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와이파이를 잡고, 핸드폰을 켜서 국회 라이브를...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집에서 유툽 보고 있는 게 부꾸러워서 여의도를 갔는데, 여의도에서 유툽을 보는...
아.. 근데 인간적으로 너무 춥기도 하고.. 크흠..
그렇게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들고
살 떨리는 20여분이 지나
드디어 윤석열의 탄핵이 가결되었습니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 생업만으로도 바빠요.
김여사님도 아프시고.
치아 교정하는 딸도 있고.
마나님은 어깨 수술했어요.
아주 그냥, 한번만 더 여의도 나가게 해봐.
너 때문에 다음주 사자성어는 아직 원고도 못 썼어..
https://brunch.co.kr/@goldfish-studio/6
에헴. 사자성어 슬쩍 끼워넣기..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