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클리셰
'특정 상태나 상황에서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
다시 난 떠나야 했다. '여기가 마지막 유배지가 될 거야' 라는 다짐과 영원에 닿을 것 만큼 건배 하던 우정도 시간 끝난 노래방에서 추가 시간을 결제 할 수 없는 지갑을 바라보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회피라는 쉽고 간편한 방법을 택한 후에는 재회도 화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딴에는 만리장성에서의 재회를 생각하며 비싼 요리들을 시킬 돈을 꼬깃 꼬깃 모으기도 했지만 잘 모이지 않다. 당장 담배를 사피우고 또 몇푼 안되는 막창 값을 내면서 다른이의 얄팍한 관심을 사기에 바빴다.
절실하지 않은 것도 싫었다.
그렇게 군대를 갔고 제대를 하니 IMF가 와 있었고 막일을 하며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 시절이였다. 그래서 죽기 보다 싫은 막일을 했다. 용역 사무실 사장에게 잘 보여서 밤에 하면 두 곱을 주는 일자리와 비가 내려도 공치지 않고 일을 나갈 수 있었다. 난 근육보다는 혀에 재능이 있었던 건가?
그 사이에 애비는 또 빚 보증을 섰고 등록금을 이젠 내가 벌어야 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내는 일이 없어졌고 '고독'이라고 느낄 사이도 없이 4학년이 되었다. 난 혼자 있는게 편해져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너도 이제 일을 그만하고 취업 준비 그런거 해야 안되긋나'
할아버지가 어느날 아침상에서 말씀 하셨다.
원래 말을 짧게 하시고 무겁게 책임을 지셨다. 그리고 한번도 '아니오'라는 대답을 해본적도 없다.
그렇게 등록금을 받아 들고 나니 몸이 편해졌다.
4학년 첫방학은 용역 사무실에 나가질 않았고 집 근처 편의점에서 짧은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 호출이 왔다.
'4340, 호출하신 분이요?'
'어~. 내다.'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른척 했다.
'누구시죠?'
'시바새끼, 모른척 하기는~~'
'아~, 오랜만이네?'
나는 뒤돌아서 뛰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은 잠깐의 침묵속에 짜증과 연민, 그리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니 느껴졌다. 표정마저도 눈에 선했다.
'저녁에 뭐하노? 나온나. 나 지금 영대 병원 사거리 근처'
'응? 갑자기? 나 알바 가야 되서'
'그럼 언제 시간되? 애들이랑 같이 볼려고 했더니 너 애들이랑도 연락 안하고 지냈더라고?'
'군대 갔다 오고 뭐 그렇게 됐지.'
나는 빈 지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채워질리 없는 헛헛함을 현이 채워 줄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하지만 의심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순대 국밥집에서 길지 않았던 좋았던 날들과 안주하기 좋은 학창 시절 이야기들 보다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빈병들이 줄을 설 때쯤 내가 말을 했다.
'그때 왜 그랬냐?'
'에이 뭐. 그땐 내가 못났었지. 넌 대학 다니고 그러는데 난 중퇴에 노가다 뛰니까'
난 할말을 잃었다. 사과를 바라는 건 나였지만 이제 오히려 내가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소주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난 소주병과 시킨 모듬순대가 내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해결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금방 계산 했다.
아니 아까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나가자. 옛날 처럼 노래방이라도 가자. 나 요즘 이 근처에서 일하는데 내가 잘 가는 집 있어'
그러고 보니 무얼하는지 어디서 지내는지 현이 친동생 처럼 아끼던 배다른 여동생들은 뭘하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 부모님은 어떤지 그리고 숙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저 나는 알랭한 사과를 받고 순대국밥을 계산하기 위해 가지고 온 만원짜리 몇장만 주머리속에 다시 세어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