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돈을 쓰고 삶을 바치는 일'

by 불은돼지

영원할 것 같이 살지만 죽을 때가 돼서야 “유통기한”을 알게 된다.

월급만 받다가 언제든 “유통기한 만료”를 맞을 수도 있다.

자아 성찰을 일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변인을

휴롬에 갈아 넣어 만들어 낸다.

과정의 혹독함은 걷어내고 만든 ‘성공담’이라는 쥬스는 뉴스, 책에서 달콤하게만 전해지고 그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걷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악인이 되기엔 악인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80억이 넘은 인구는 하나 같이 오롯한 자기 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출생 – 성장 – 결혼 – 2세 – 죽음이라는 생물학적인 흐름에도 80억개가 존재하지만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에서는 다발 다발씩 묶어 ‘효과적인 노동력 착취’를 위한 연구를 통해 한시적으로 직업을 가지게 한다.

그 또한 각기 유통기한을 가지고 어떤 필요에 의해 다음의 것으로 대체된다.

자신의 의지가 ‘1’도 들어가지 않는 ‘해고’,‘명예퇴직’,‘대기발령’등은 개인에게는 ‘일’이 처형 당하는 일이겠다. 그걸 두고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래’ , ‘준비를 했어어야지’ , ‘그러게 진즉 잘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지개 반사를 시전하고 싶다.


테일러 시스템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시전한 컨베이어 벨트로 부의 크기가 커졌지만 우리 모두는 부품 취급을 받게 되었다. 낡아가는 톱니바퀴에게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톱니 바퀴가 되었다.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회사라는 존재는 공리주의 가면을 쓰게 되었다. ‘회사가 잘 되어야지 우리가 잘되지’라는 말은 꺼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땔감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을 위한 경영지표 개선, 업무 디지털화를 위한 조직 개편과 같은 거짓말은 체지방 한자리 수의 매끈한 보디빌더의 몸처럼 근사하지만 필연적으로 정리해고, 희망퇴직이라는 다이어트를 당연하게 받아 들이게 만든다. 그 동안 열심을 재촉하며 근육이 될 것을 강요한다.



거짓말이 지구를 두 바퀴를 돌 때 진실은 신발끈을 매고 있는 중이란다. 망할 산업혁명 이후 2세기 지나 인간 자체에게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국보법에 손을 뒤로 결박 당했다. 남녀 평등을 외치지만 난 여전히 엄마에게 ‘밥’을 요구한다.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라는 말이 참 좋긴 하지만 여전히 평등을 정의 하지 못하고 그게 어떤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나도 일이라는 것을 만 이십몇년째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지인 몇 명은 장밋빛 미래를 담보로 대출을 내어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대학 동기 한명은 어린 등기 이사가 되었지만 암을 진단 받고 소풍을 끝냈다.

명절 때마다 다른 벤츠를 몰고 오던 동네 형은 이제 가족들도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큰 분양 프로젝트를 약속했던 부동산개발대표는 경제사범으로 나랏밥을 먹고 있다.

한 달에 20만원 남짓 용돈 쓰는 것이 자랑이던 꽤재재한 관리팀 부장은 신도시 상가를 샀다.


그리고 나는 십 몇 년째 꼼짝도 않는 월급명세서를 못 본 척 하며 읽고 쓴다.

‘돈을 쓰고 삶을 바치는 것이 일’보다는 온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돈벌이에 마음이 기울어 진다.

결심하지 않는다면 우물쭈물 하다가 묘비명만 남기게 된다.


* '돈을 쓰고 삶을 바치는 일'은 UMC/UW의 '내가 쓰러지면' 中 가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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