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된 딸들- 나의 두 딸들의 이야기- 날 닮지 않은 딸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아침은 나만의 시간이다. 6시 알람이 울린다. 나만의 시간은 이제 끝이다. 이윤이(첫째 딸)의 폰은 거실에 있다. 스스로 일어나서 직접 끌 때까지 기다린다. 요란한 소리는 점점 팽팽해진다. 10분 간격으로 세 번을 더 듣고서야 일어난 큰 따님이시다. 아침인사를 하며 보이는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쌍꺼풀이 없는 눈은 뜨려는 건지 감으려는 건지 분간하기 힘들다. 솜이불 같은 눈꺼풀을 덮고 다시 자려는 것 같다. '쿵쾅' 대는 소리에 코끼리인가 싶어 쳐다보면 짧은 잠옷에 다시 고개를 돌린다. 바깥에서는 숨기기 바쁜 다리가 집에서는 모델이다. 다리를 밀어 국수로 만들어 주고 싶어 오늘도 잔소리를 시작한다.
"밤에 군것질하면 운동해도 소용없거든."
"다이어트 안 할 건데!"라고 말하면서 폼롤러 들고 들어간다.
"그걸로 백날 밀어봐라. 차라리 아침에 걷는 게 더 효과 있을 걸."
대답은 없다. 기다릴 대답도 없었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몇 번 따라 나와 산책이라도 하더니 중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침에 할 게 많아서 그런지 같이 운동할 시간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들어가면 습한 집안 공기에 현관문을 열어 둔다. 그러면 드라이어 소리가 윙윙거리는 딸의 방을 향해 소리친다.
"이 날씨에 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그래. 찬물로 한 번 해봐. 얼마나 개운한데."
"찬물로 했거든." 크게 들리던 드라이어 소리가 멈추고 고요함이 내 뒤통수를 긁는다.
"어! 그래. 찬물로 하니까 시원하고 좋지. 하루에 한 번 찬물로 하면 사람의 몸에 말이야."
"알았으니까. 나중에 말해줘!"
투머치 토크를 하는 박찬호보다 더 길게 할 뻔했다. 유난히 첫째 딸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많아지고 더 듣기 싫은 조언은 더 길어지는 것 같다. 둘째 딸에게는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는 식으로 맘대로 하게 해 주는데 왜 그런지 이윤이에게는 자꾸 말이 길어진다. 한의사가 꿈이 되고 나서부터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 시작한 딸이 나는 반갑지 않다. 고등학생이 되면 하기 싫어도 잠자는 시간 빼곤 공부만 해야 하는데 벌써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그 치밀한 성격이 반갑지 않다. 나에게는 없는 성격인데 분명히 '지엄마를 닮아서 저래.'라고 방향을 돌려 버린다. 날 닮지 않고 잘해서 질투하는 것이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당연히 나를 닮아 머리가 좋은 거라는 착각도 하고 있다. 나만 하는 착각이 확실하지만 말이다. 확실한 건 외모는 날 닮지 않았다. 키도 크고 날씬하다. 굵은 다리지만 날씬하게 보인다. 눈도 코도 입도 얼굴에 중앙으로 모여 있는 나와는 다른 얼굴이다. 몽골인의 후예임을 외갓집에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화장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가 몽골인의 후예임을 감추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가늘고 긴 머리카락으로 가린 작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왼쪽에 있는데 오른쪽을 보며 인사한다.
재빠르게 몸을 틀어 고개를 쭈욱 내밀었다. 분홍빛으로 물든 딸의 볼이 예쁘다. 하지만 아침밥을 서서 먹을 만큼 시간에 쫓기면서도 기어코 화장은 하고 가는 딸이 못 마땅해 퉁명스레 대꾸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뭘 해! 화장한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잘 갔다 와~"
그리고는 긴바지에 짧은 티셔츠 차림을 보고 '더운데 긴바지 입고 손 들면 배꼽이 보일 텐데'라며 눈 감고 하늘만 쳐다보고 생각한다.
'참자. 등교길에 잔소리는 최악이다. 참아야 한다.'
닫힌 문을 멍하게 보다 이내 청소한다고 이윤이 방부터 들어가 본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방바닥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며 화장대 주변에 떨어진 화장품 가루며 보고 있으면 남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생각하다가도 아니지 아직은 아니면 좋겠다며 고개 흔들어 생각을 지운다.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자들로부터 지키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집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딸을 가진 아빠의 귀는 엄청 귀 기울이게 된다. 지나가는 낯선 이만 봐도 으르렁대는 개처럼 매일매일 뺏기지 않으려고 짖고 있는 건가 보다.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딸을 자꾸만 지우고 있는 바깥세상으로부터 딸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어 짖어 댄 모양이다.
청소를 끝내고 못내 잔소리만 해서 보낸 딸에게 편지를 한 통 쓴다. 요즘 매일 아침 필사 중이라 손글씨 연습도 해서 나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장문의 카톡이나 문자가 아닌 편지를 선택했다.
"이윤아!
아빠가 지난번 여행 가서 쓴 엽서 이후로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네. 요즘 아침저녁으로 볼 시간도 짧은데 잔소리한다고 미안해.
나를 닮아 머리가 좋아 성적이 좋아 기분 좋지만 엄마를 닮아 치밀하고 성실한 성격까지 닮아 아주 잘 해내 있다고 생각한단다. 한편으로는 엄마처럼 네가 겪게 될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사회로부터의 차별이 널 상처 입힐까 봐 걱정이란다. 점점 다가오는 세상과 오늘은 아니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문을 사이에 두고 매일매일 대치하는 듯하구나. 너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아빠 스스로가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뀔 때쯤 키를 재 보고 그어 놓은 까만 선이 아빠 눈높이까지 가까워졌을 때 알고 있었단다. 남자친구가 생겼다 해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었단다. 아직은 없다고 하지만 곧 좋은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단다. 하지만 아빠 속마음은 동생인 이우가 아빠만 바라보듯 아직은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까지도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인 네가 할머니나 엄마처럼 싸우지 못하고 상처받고 타협할까 봐 아직은 아니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주렴.
한 번을 보더라도 오늘 봐야 할 책이면 꼭 넣고 다니는 딸아. 짓눌린 어깨를 볼 때마다 벗어던지게 하고 싶단다. 책의 무게에 매달려 있는 가느다란 팔을 보고 있자니 도망쳤던 아빠의 과거가 생각나서 아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가 느는 것일 수도 있단다. 그래도 너의 의지로 책상 앞에서 버틴 시간들이 너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을 수 있는 체력을 키워주고만 싶은 생각뿐이란 걸 알아주길 바란다.
느려터진 너의 달리기로 체육대회 반대표까지 되었다고 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길고 굵은 다리를 보고 생긴 선입견으로 인해 뽑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끈기를 보고 뽑혔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단다. 그런 면에서는 엄마를 닮아서 아주 다행이란 생각인 든단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 햇빛 아래에서 땀 흘려 뛰는 것만이 운동이라 생각한단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네가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작은 방에서 아빠의 편견을 폼롤러로 긁어내고 있었음을 몰랐구나. 미안해. 하지만 그 굵은 다리는 폼롤러로 민다고 바뀌지 않을 거란다. 이우가 매일 아빠한테 말하듯 아빤 T 란다. 그 다리는 이모들을 보면 알 수 있잖아. 나중에 엄마가 알려줄 거란다. 아빠는 모를 가느러 진 방법에 대해서 말이야.
편지도 잔소리가 되고 있는 듯해서 그만 줄일 테니 저녁에 학원 마치고 제발 다이어트한다는 말로 먹고 싶은 걸 참지 말길 바란다. 참으면 더 늦은 시간에 먹고 잠들 뿐. 아침에 부은 얼굴은 그래서 그런 거란 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너의 얼굴이 부어도 예쁘게 보는 아빠가."
편지를 쓰고 난 후 얼마 전 학교 폭력을 당한 친구와 행한 친구들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름을 고민하며 조언을 구했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때 조언이랍시고 어른들의 세상에서 바라보며 해 준 말들이 아직도 한심스럽기만 하다. 올바른 결정을 스스로 한 딸을 보고 흐뭇했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가름할 수 있는 단호한 성격을 가졌음은 좋지만은 않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보니 그 단단함은 더 단단함에 맞서 부서질 때까지 부딪치게 되고 깨질 때까지 부딪혀 상처로 남게 된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말로 쉽게 넘기고 싶지만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니 그런 어른이 된 게 못 마땅할 뿐이다. 나를 닮은 딸은 홀로 튀어도 모난 돌이라도 당당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에 좀 더 커서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갈 때 그때는 잔소리 대신 해 주고 싶을 뿐이다. 그때는 꼭 굵은 다리든 화장한 얼굴이든 당당해져 있는 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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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썼던 '벌써 다 큰딸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다시 썼습니다. 글쓰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보여주니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꼭 다시 쓰라고 하시길래.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대기조차 부끄러워 처음으로 세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쳤습니다. 잘 쓴 글이라서 다시 올리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보시는 분들이 비교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 올렸습니다. 도려내듯 도려내고 싶어도 잘 안되네요.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평가받을 곳이 여기뿐이라 이렇게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