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퇴사 직전,
'에에? 이렇게 갑자기요? 좀만 더 있어보지..'
'그래 잘 생각했어요. 퇴사는 지능 순이라 하잖아요'
퇴사를 선언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좀만 더존버형', '그래잘했다형'
굳이 내가 퇴사를 왜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나로 인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사기를 떨구고 싶지도 않고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다니던 회사와 무관한 친한 지인들과 함께 진짜 퇴사 이유를 밝히며 광어회에 소주 한 잔 기울이곤 했다. 그렇다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을까.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정해진 시스템 아래에서 일하는 것보단 시스템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하게 하고 싶단 야망 때문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35개월간 디자이너로써 최선을 다했다. 일을 즐기면서 힘들다는 생각 한 번 해보지 않았다. 회사의 성장은 나의 성장이란 확신을 가지고 회사가 커가는 것을 보는 재미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내 연차에 걸맞지 않은 '팀 리더'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 그리고 이때 사람을 이끈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퇴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개인의 관점 그리고 조직의 관점으로 나눠서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조직의 관점부터 이야기하겠다.
회사는 크던 작던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디에 있냐가 상당히 굉장히 진짜 너무 중요하다. 이는 조직이 크던 작던 마찬가지이며 조직의 규모가 작을수록 사람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회사의 성장 속도보다 개인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느끼는 구성원들이 생기면 적색 경보등은 켜졌다 생각한다. 주로 회사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티키타카가 좋았던 구성원들이 빠지고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되는 시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솔직해져 보자. 우린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가고 우리의 능력을 쌓고 향상하기 위해 회사에 간다. 또한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이 회사를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24/7 일을 하며 꿈을 위해 나아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에 문제가 생기니까.
회사가 성장하면 개인은 더 실력을 쌓거나 도태된다. 회사가 성장하는데 그 물들어온 배에서 나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실력을 쌓고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여기서 핵심은 '성취감'이다. '내가' 혹은 '우리가' 해냈다는 그 성취감의 짜릿함과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날은 그냥 바로 삼겹살에 소주 가는 거다.
그런데, 개인의 성장 속도가 조직의 성장 속도보다 빠르다고 느끼면 어떻게 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조직과 조직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회의적으로 바뀐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왜 못할까', '더 잘할 수 있는데 이거밖에 안될까' 라며 말이다. 답답해진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위험하더라. 사고관이 내가 '중심'이 돼버리고 상대방의 입장과 능력을 이해하지 않게 된다. 그저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며 스스로 낙인을 찍어버린다. 이는 상당히 오만한 자세임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부족한 점이 있는데 조직과 조직원은 왜 그럴까 라며 질타하다니.
가르쳐보기도 하고 타일러 보기도 한다. 좋은 자료가 있으면 공유도 하고 스터디를 해서 조금이라도 조직원들을 성장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행하는 단계까지 계속 답답해하며 스트레스받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게 심화되면 혼자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런 나의 태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
두번째는 조직의 비전이 흐릿해지거나 구성원이 각자 생각하는 목표지점이 다르다면 문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
특히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선 이 '비전'이 중요하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즉, 비전이 있으면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미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미션'을 하나둘씩 완성하기 위해선 작게는 팀 단위 크게는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기업 비전은 '가장 저렴한 항공' 이기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가장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과감하게 접는다.
이렇게 조직의 방향은 조직원들에게 공유가 되어야 하고 공유를 넘어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리마인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조직 혹은 팀이 흔들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를 '비전의 불일치'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작은 불일치여서 크게 티는 안 나지만 삽시간에 작은 눈덩이가 큰 눈덩이로 되는 것처럼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문제가 발생한다.
어차피 쉽게 망하지 않는 회사 구조라면 매달 나오는 월급을 받아가며 버티는 것도 안전한 방법이겠다만 성장과 성취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버티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난 아직 안전을 택하기엔 하고픈 것과 이루고픈 것이 많았기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조직의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선 어떨까.
출근과 동시에 잃는 웃음 퇴근과 동시에 웃음을 띈다면 조짐이 보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을 사랑한다.'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짜릿했고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한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겐 회사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닌 나를 향상시키는 곳이자 나의 능력을 펼치는 하나의 무대였다. 그 무대는 스타트업이 딱 적당했다. 회사로 가는 출근길엔 '오늘은 이거 이거 끝내 놓고 다음번엔 이어서 이런 거 해봐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얼른 회사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다양한 사건사고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추진! 추진! 을 외쳐오다가 그 추진 속도에 맞춰지지 않아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우도 있고, 의견 차이로 인해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사내에선 보이지 않는 '편'이 생기기도 하며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의견이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조직의 성장 속도보다 개인의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는 오만한 생각이 드는 순간 출근길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웃음을 띄었던 나의 표정은 점차 무표정으로 바뀌어져 갔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문제였다. 업계에서 더 빠르게 파이를 먹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종종 일으키곤 했고 결국 조금씩 입을 닫게 되었다.
'왜 우린 이거밖에 못할까'라는 건방진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생각한다. 욕심만 가지고 되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조직에 대한 스트레스는 조직원에 대한 스트레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 그야말로 '예민 보스'가 되어버린다. 점차 성격마저 예민해져 가는 스스로를 보며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그만 자리를 비워야 할 때라는 것을.
퇴사하고 뭐하지?라는 계획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나왔다.
그리고 퇴사하고 난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