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불구자
"글 내용은 좋은데 자기 이야기가 없습니다."
...
'언제부터 난 내 이야기를 못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시나리오 수업에서 내 글은 비평과 칭찬을 골고루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맹점은 역시 내 이야기를 피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기자 생활이 헛되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 정도의 문장력은 인정해주는 거 같았다. 하지만 부끄러웠다.
10년 가까이 글쓰는 것으로 먹고 산 사람이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시나리오라는 장르에서 가장 큰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속으로 되풀이 하며 내 자신에게 답을 구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지만 한 번도 내 자신을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항상 나의 글 대상은 타인과 물건 그리고 그들이 겪는 상황들이었다.
머리 속에는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피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아지가 새벽에 비명을 지르고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집 마당에 사는 한 쌍의 비글 사이에서 8마리 중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작은 막내였다. 살리기 위해서 가슴에 끌어안고 달려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숨이 멈춘 뒤였다. 강아지는 비명을 멈춤과 동시에 내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어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잔인한 이웃의 농약이 강아지의 배를 고통스럽게 뒤틀어 버린 것이었다. 연약하고 작은 생명체의 죽음은 충격과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갑작스런 폭풍우는 나로 하여금 내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잠시 놓게 하였다. 시나리오를 위해 준비하던 머리 속의 원고들은 사라졌고 손에서 펜도 놓았다. 글에 정신이 팔려 강아지를 더 잘 챙기고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나는 기자생활을 정리한 뒤 소위 백수가 되어 다시 시나리오 강좌를 찾았다. ㅇㅇㅇ기자라는 타이틀과 명함을 버리고 나는 온전히 인간 ㅇㅇㅇ로 다시 하얀 백지 위를 바라보았다.